연예인들의 자살뿐만 아니라 꽃다운 나이인 젊은이들의 자살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정부에서는 자살예방협회와 자살예방 프로그램 등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려 한다지만, 자살에 대한 근본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언젠가 한 여고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주변 사람들은 "학교생활을 잘 하던 학생이었는데…", "공부도 중상위권을 유지했다는데…", "집안에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라며 여학생의 죽음을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처럼 어리석은 부모와 주변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한다. 얼마나 현실이 안타깝고 절망적이었으면 죽겠다는 결심을 했겠는가? 왜 앞날이 창창한 우리 아이들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을 훈육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간섭하고 규제한다. 아이들을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고, 기성세대의 부속물로 여기며 억지를 부린다. 아이들의 심정을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한다. 과연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젊은 그들의 처지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나라의 교육 또한 젊은이들 자살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정권을 잡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흔들린다.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후보로 나온 사람들이 현 교육정책에 관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이런 사람들이 당선돼 우리나라 교육을 이끌고 있으니 온갖 비리가 난무하고, 이에 휘둘리는 아이들만 혼란스럽다.
‘ 말을 강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이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아이들이 물을 먹고 싶어 하는지 아니지는 관심이 없다. 입을 벌려 억지로 물을 먹이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은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어려운 지경에 빠지면 그저 죽고만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세상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여전히 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끝없이 규제하고 강요하니 아이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커가는 아이들을 향해 무작정 "이것은 하지마라" “이것은 안 된다”라며 끝없이 끌고만 가려고 하니, 탈출구가 없는 그들은 결국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채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용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 현실에 접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를 소유물이나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는 대용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각자의 인생을 스스로가 책임지고, 개척하고,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려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한다.
똥을 덮는다고 냄새까지 막을 수 없다. 지금도 우리 스스로가 교육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덮어버린다. 너무도 쉽게 대처한다.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다. 기성세대의 집착과 야망이 아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기성세대의 직무 유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