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 국가들은 건설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를 10년전에 포기했다. 미국도 최저가낙찰제는 선택적 적용이지 무조건은 아니다. 선진국들이 공공공사에서 최저가낙찰제를 포기하거나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국고 절감보다 국민과 국가가 입을 손실이 더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고절감이라는 명분은 입찰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반짝 효과에 불과하지만 손실은 공사 및 준공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최저가로 인한 반짝 효과보다 국민이 입을 수 있는 손실이 크다는 계산이다.
필자가 보는 국내 공공공사 최저가낙찰제는 최저가가 아닌 덤핑가격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현행 공공공사 입찰방식으로는 최저가격을 가려 낼 수 없다. 덤핑가격이 아닌 최저가로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한다. 반대로 덤핑가격으로 원하는 성과품을 얻을 수 없다는 점도 누구나 인정한다. 현행 최저낙찰제로 최저가격을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건설공사의 직접원가 구성에서 자재비와 인건비의 비중은 거의 같다. 예정가격의 50%에서 공사를 완공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건비 삭감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반 이상이 거품이라는 주장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
둘째 최저가격을 판단 할 수 있는 공법과 가격 심의방식이 결합 될 수 없는 문제점이다. 현행 최저가심의방식은 입찰자가 제안하는 공법이 아닌 설계자가 결정한 공법이기 때문에 단가 외에 공법이 전혀 고려 될 수 없는 방식이다. 즉, 낙찰율을 높이기 위한 입찰 요행이 기술력을 압도하는 방식이다.
셋째 입찰자는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입찰가격 산정보다 승률(?) 높은 입찰가격이 아닌 승률을 결정하는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덤핑이다. 기술보다는 운에 의지하는 '운찰제'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는 현행 입찰방식에서 승리 할 가능성이 불가능한 구조 때문이다.
공공발주자가 산정하는 예정가격과 입찰자가 제안하는 금액 차이를 국고 절감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계약 후 준공가격이 당초 예정가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낙찰율이 경쟁률에 따라 등락을 거듭함에도 불구하고 발주자의 예정가격은 거의 불변이다. 발주자는 완성공사의 준공 가격이 얼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저가낙찰제나 대안입찰방식 등 입찰단계에서 크게 벌어진 낙찰률도 준공단계에 들어서면 준공금액에 입찰단계에서 벌어진 만큼의 편차가 없어진다. 따라서 발주자는 사업타당성분석 시 사용하는 공사원가는 낙찰률에 관계없이 표준화된 공사 준공가격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최저낙찰제에 의한 국고절감은 달성 될 수 없다.
건설공사가 기성제품이나 완공된 주택 거래와 같이 구매 계약 자체로 모든 게 결정이 되는 구조라면 기대 해 볼 만하다. 건설공사는 기성 제품 구매가 아닌 미래 완성 상품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 구매에 해당되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도 입찰금액만으로 몇 %를 절약했다는 단순 계산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
정부가 공공공사 원가 절감 수단으로 최저낙찰제를 확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정책을 펴는 것도 공공공사의 원가를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다. 전기·통신, 설비를 분리 발주하는 것도 모자라 주요 자재까지 분리 발주하는 것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건설공사에서 계약을 분리하면 관리해야 할 관리계수가 기하급수로 증가되는 특징이 있다.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발주자일수록 건설공사를 1건의 계약으로 해결하려는 이유도 역량 부족 때문이다. 분리 할수록 발주자가 관리해야 할 대상과 범위가 늘어나 공사비 증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정한 사업자나 공급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결과적으로 공사비 증가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물량 배분이 아닌 공사비의 최저낙찰을 통한 국고절감이라는 큰 목표를 갖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스런 입찰방식을 사용해서는 결코 목적 달성이 되지 않는다. 발주자의 변별력과 책임성이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발주자가 자신의 역량과 공사 특성에 맞는 입찰방식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의 획일적 최저가낙찰제로는 운찰제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건설시장은 국내 공공시장 발주패턴과는 전혀 다르게 통합발주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공공사의 역주행으로 정부는 무엇을 얻으려 함일까? 한국 건설시장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내외다. 1%가 99%를 무시하면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
한국보다 더 선진화된 유럽연합시장에서 최저낙찰제가 폐지되었던 배경은 부작용 때문이다. 건설업체 보호가 아닌 국민보호를 위한 선택이다. 덤핑가격이 절대 성공 할 수 없다는 자체가 확고한 글로벌 표준 개념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