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선택한 '와인 경영'

2010-03-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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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와인에 보낸 찬사다.

국내에 와인 수입이 개방된 것은 1987년으로 20여년 남짓이다. 지금은 와인이 대중화돼 가는 추세지만, 품종이나 지역에 따라 마시는 방법이 달라 여전히 까다롭게 느껴진다.

‘CEO 와인에서 경영을 얻다’의 저자 진희정이 인용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CEO 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와인 지식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84%는 와인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저자가 만난 CEO들은 와인에 대한 접근법은 한결같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일단 즐기라”고 조언한다.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는 일이 와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와인이든 인생이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와인 속에 숨은 오감(五感) 경영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대표이사는 와인의 특색을 ‘오감(五感)’에 비유한다. 와인은 맛은 색깔과 향기, 잔 부딪치는 소리와 잔을 잡는 감촉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낸다. 식전 와인 ‘마데이라’는 화이트 와인이지만 그 가열 과정에 따라 담황색을 내기도 한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맛과 향의 여운도 달라진다.

와인의 숨은 특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사장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는 ‘오감(五感) 경영’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 대표는 안산의 유통매장을 열면서 1층은 문화센터와 각종 클리닉, 어린이 놀이터, 민원센터 등 생활 서비스 시설로 구성하고 2층을 상품 진열 코너로 구성했다. 상품과 고객 서비스 시설을 분리한 것이다. 그동안 창고 형태의 할인점만을 봐왔던 고객들은 “여기가 백화점이야, 할인점이야?”라며 큰 반응을 보였다. 실패할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와는 달리 차별화된 오감경영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와인이든 인생이든 ‘기본’이 갖는 힘

최동주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최고의 와인으로 ‘샤토 피작’을 꼽는다. 최 사장이 이 와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카베르네 쇼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 세 품종이 블랜딩 돼 있으면서도 기본에 충실하고 도발적이지 않은 편안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최 사장이 2005년 현대아이파크몰의 전신인 스페이스9 사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큰 충격에 빠졌다. 임차점포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율은 20% 미만이었고 입점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적자가 쌓여가는 상인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부동산 기획과 운영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던 대형 쇼핑몰 건설 관행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최 사장은 미국식 쇼핑몰의 기획과 운영 사례를 도입해 소비자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자신의 생각을 납득시키기 위해 불만이 가득한 상인 대표 300명을 뽑아 밤샘토론을 진행했다. 결국 상인들과 상생협약서를 체결하고 신뢰를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급하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체득한 것이다.

최 사장은 와인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쉽게 접근하고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도 와인과 같다. 어렵게 풀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진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그의 발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주경제=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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