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닝시즌의 한복판이다. 들썩임이 심한 곳은 단연 은행권이다. 1위 금융지주사를 자부하던 KB금융이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충격을 안겼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은 신이 났다. 실적 발표 이후 KB금융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우리금융에 대해서는 KB금융을 제쳤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이 KB금융을 앞선 것은 물론 1위에 등극했다는 표현도 서슴치 않고 있다.
상황을 살펴보면 특이한 것이 있다. 국내 투자기관이 일제히 'KB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반면 외국계를 중심으로 'KB 감싸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KB금융이 지난해 어닝쇼크를 기록한데다 모멘텀 형성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 4분기 순이익이 예상치의 5분의1에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시중은행 중 꼴찌를 차지했다는 것이 특히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앞으로 실적이 개선될 여지가 크다지만 전반적으로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다분하다.
외국계 투자기관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다. 도이치증권과 UBS증권, JP모간 등 국적을 불문하고 KB금융에 대해 긍정적인 리포트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해외투자기관의 KB금융에 대한 분석을 요약하면 '과거를 묻지 마세요'다. JP모간은 KB금융의 4분기 실적은 저조했지만 올해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며 목표주가를 올렸다.
지난해 실적부진은 역설적으로 올해 수익이 상당히 좋아짐을 암시한다는 것이 이유다. 순이자마진의 회복이 다른 은행보다 우수하다는 사실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도이치증권은 금호그룹에 대한 충당금 적립이 실적악화의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KB금융이 다른 지주사에 비해 보수적으로 쌓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KB금융이 경쟁 지주사들보다 앞으로 쌓아야 할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대형 외국계 투자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금융지주사의 실적에 대한 국내 반응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금융기관이 땅 팔고 주식 팔아서 좋은 이익을 올렸다는 것이 과연 큰 의미가 될 수 있나"라면서 "자산 사이즈에 목메는 것도 최근 금융시장을 감안할 때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금융은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으로 매를 먼저 맞는 것 뿐"이라며 "영업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KB는 지난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관치 논란의 중심지인 KB 사태를 지켜보는 시선과 함께 실적 결과에 대해서도 국내와 해외의 온도차는 극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KB금융에 대한 외국계 투자기관들의 긍정적인 입장의 배경을, 강정원 행장이 외국계 금융기관 출신이라는 이유로 끼워 맞추는 것은 궁색하다.
미국이 시발점이 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른바 선진 금융기관들의 위상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증권가를 중심으로 KB 사태를 지켜보는 시각은 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강정원 행장이 KB금융 회장 후보 자리를 내놓은 이후 은행권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갈 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끼는 자식을 강하게 키우겠다는 식이라면 너무 때릴 때 비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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