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국적 없는 어휘와 언론의 역할

2009-12-0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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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 편집위원·일본 문예춘추 서울특파원

   
 
박승민 편집위원·일본 문예춘추 서울특파원
요즘 인터넷과 젊은이들 사이에 '초식남'과 '건어물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두 단어는 최근에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이다. 유행어는 한때 유행하다가 거의 소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말에 이런 종류의 유행어가 아닌, 누군가가 언제부터인지 슬며시 쓰기 시작한 국적 없는 어휘들이 많다. 그런 어휘는 이미 우리말로 정착돼, 국정을 책임진 지도자들은 물론 신문 방송 등 언론에서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향적(前向的)이라는 단어다. '전향적'이라는 말은 일본어의 '前向き(마에무키)'에서 들여온 한자어다. 일본 사전에는 '적극적ㆍ진보적(진취적)인 태도'라고 풀이돼 있다. 이 단어를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예를 보면, 정운찬 총리가 총리후보 때인 지난 9월 22일, "총리에 임명되면 용산 참사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11월 28일자 사설에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사과하고 나선 마당에 원안론자들도 좀 더 전향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주기 바란다."라고 쓰고 있다. 두 가지 예만 들었지만 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한 장관들의 답변 속에서도 '전향적'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다른 언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전향적'이라는 단어는 우리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왜 이런 차용 어휘가 사용되고 있을까?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 단어가 1990년대 초중반부터 신문에서 사용된 걸로 안다. 필자는 이 단어를 국내 매체의 당시 일본 특파원이나 언론 기고가가 맨 처음 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언젠가 유명 소설가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작품을 쓸 때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적당한 말이 없어, 우리말 어휘의 궁핍함을 실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적극적' 이라는 말로 쓰면 충분한 단어를 굳이 '전향적'이라는 외국 언어를 빌려와 쓸 필요가 있을까?

최근 차용해온 말을 보면, '온도차(溫度差)'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도 일본의 언론에서 오래 전부터 써 온 단어인데 요즘 한국 기자들이 기사에서 쓰기 시작한 말이다. '여야, 북에 유감 표명... 대응방식 온도차'(YTN 11월 10일), '李대통령 FTA 온도차 극복 총력 세일즈'(한국경제신문 6월18일), '한, 대통령과 대화 계파별 온도차'(연합뉴스 11월 28일) 등 많은 매체들의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이 말은 '견해차'나 '입장차'라고 써도 전혀 의미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같은 예로 '열대야'(熱帶夜)라는 말도 오래전부터 차용한 말이다.

한국에 신문사와 방송사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는 일제 강점기이다. 당시 초기에는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을 때여서 사내에서 쓰는 기술용어나 기사 속에 일본어식 한자어가 많았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된다. 또한 한자 문화권이어서 우리 말의 약 70%가 한자어로 구성돼있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까지 굳이 일본어를 빌려와 쓸 필요가 있을까?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나라의 언어다. 외국어를 공부하다보면 명사 외에는 그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말(표현)이 많다. 그것은 그 나라만의 고유한 문화 때문이다. 그 나라의 말에는 그 나라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음성으로만 존재하던 자신들의 고유 말을 한글로 문자화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은 "교양 있고 표준적인 언어생활의 기초를 다지며, …국어와 관련된 유산을 보존, 연구함으로써 국어생활의 향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함"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국적 불명의 차용 언어 등을 기록해 언론사 등에 배포해 고쳐나가는 일은 물론 그런 단어를 아름다운 한글로 바꿔 가는 작업도 해야 한다.

국민들의 언어 구사에 언론의 영향은 크다. 언어는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정신이 깃든 그 나라 고유의 말을 우리가 일부러 빌려와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들은 용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박승민 편집위원·일본 문예춘추 서울특파원 yous11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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