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성 교수 |
특히 농부들에게는 바쁜 일손 때문에 들에서 식사하는 일도 많고 들에 눕거나 앉아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로 인해 전염될 수 있는 질환들에 대해 주의가 요망되고, 도시인도 추수를 돕거나 들판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때에나 들녘에 누워서 쉴 때 주의가 필요하므로 이들 질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 한국형 출혈열
6·25 이후 우리나라의 중부지방에서 원인 모르는 괴질로 크게 유행했으나, 1976년 이후 쥐에서 기생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병으로 밝혀졌다. 도시형 출혈열의 원인인 서울바이러스도 있다. 유행성 출혈열이라고도 부른다. 들쥐나 집쥐의 배설물에 섞여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들어와 감염을 일으킨다. 봄과 가을에 발생하는데 가을, 특히 11월에 많이 발생하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어디서나 생긴다. 도시에서도 생길 수 있지만 들일을 많이 하는 농촌지역 주민이나 군인들에게 잘 생긴다. 어느 연령에나 생길 수 있지만, 일을 많이 하는 젊은 나이에 잘 생기고,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잘 생긴다. 균이 사람에게 옮겨지는 경로는 등줄쥐가 배설한 오염물질이 사람의 호흡기로 옮겨진다고 생각된다.
증상으로는 전신쇠약감, 식욕부진, 현기증, 근육통, 두통 등 감기몸살과 같은 증상이 있다가 갑자기 38~41℃의 열이 심하게 나고, 오한이 난다. 2-3일 후부터는 구역질과 구토가 생기고, 배가 아프다. 얼굴과 목 주위가 붉게 달아올라서 마치 햇볕에 데인 것같이 되고, 결막에 충혈이 생긴다. 저혈압이나 신부전이 잘 오며, 다른 합병증도 많이 생기므로 심한 경우에는 큰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더라도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병이기 때문에 특효약이 없다. 이 병에 걸린 사람 100명중에 7-10명이나 죽는 무서운 병이다. 그러므로 이 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생겼을 때에는 빨리 병원을 찾아 의사의 진단을 받고, 지시에 따라야 한다. 병원에 입원하여 합병증이 생기지 않게 하고, 몸의 전신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것은 예방주사가 개발되어 있다. 논밭에서 일을 많이 하는 농민, 야외에서 훈련을 많이 받는 군인, 야외로 자주 놀러가는 도시인들은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좋다. 첫해에는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을 맞고, 그 다음 해부터는 1년에 한 번씩만 맞으면 된다.
렙토스피라라는 나선형의 균의 감염에 의해 생기는 전염병으로, 1984년부터 정확한 원인이 밝혀졌다. 이 균도 들쥐나 포유동물의 몸속에 기생하다가 감염된 동물의 오줌을 통해 배설된 뒤, 물속이나 볏짚, 흙 속에 있다가 피부의 상처나 점막을 통해 들어와 감염된다. 계절별로는 9-10월 사이에 비가 온 다음이나 추수기에 잘생기며, 벼 베기나 탈곡을 할 때 오염된 물이나 흙, 볏짚과 접촉을 많이 하는 농민에게 많이 발생한다. 이전에는 중부지방에 많았는데, 차츰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도 환자발생이 많아지고 있다.
무증상 감염증이 많아서 황달이 없는 경증 환자가 병에 감염된 환자의 90%이며 황달이 나타나는 중증 질환은 10% 이하이다. 증상으로는 논일을 한 후 평균 7-13일 뒤에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두통은 앞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빠지듯이 아픈 것이 특징이다. 또 허리와 넓적다리의 근육통이 심하고, 갑자기 열이 난다. 이런 상태가 4-9일간 계속되다가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고, 숨이 차고, 기침을 하며, 구역질, 구토, 복통도 생긴다. 의식장애, 결막충혈, 황달, 빈혈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즉시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국형 출혈열과는 달리 조기에 항생제를 쓰면 렙토스피라증은 비교적 치료가 잘 된다. 하지만 증세가 차츰 진행하여 폐, 간, 콩팥 등에 균이 퍼지면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예방하는 방법은 렙토박스라는 예방주사가 개발되어 있으므로, 이 병이 잘 생기는 때로부터 한 달 전에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다. 첫 해에는 1주일 간격으로 두 번을 맞고, 그 다음 해부터는 1년에 한 번씩만 맞으면 된다. 유행지역을 여행할 때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항생제로 예방할 수도 있다.
◆ 쯔쯔가무시 병
리케챠라는 일종의 작은 세균에 의해 전염되는 열성질환으로, 특이하게도 진드기의 애벌레가 사람 피를 빨아먹을 때 감염된다. 우리나라 전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잘 생긴다. 병이 유행하는 시기는 10월과 11월에 집중되어 있고 12월에도 상당수 발생한다.
진드기의 유충은 평소에는 풀이나 나무에서 진액을 빨아먹고 생활하지만, 이 유충이 애벌레로 변태할 때 동물의 조직액이 필요하여 피를 빨아먹는데 이 때 사람에게 감염된다. 풀이나 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일을 하거나, 밭에 앉아 김을 매거나 일을 할 때에도 진드기에 물려 감염되므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 병에 더 잘 걸린다.
진드기의 애벌레에 쏘이면 대개는 모르고 지내지만 10-12일이 지나면 쏘인 부위에 물집이 생기고 차츰 짓물러 결국에는 흑갈색의 딱지가 앉는다. 갑자기 열이 오르고 머리나 눈이 아프기 시작하며, 밥맛이 떨어지고 온몸이 나른해지며, 기침이 난다. 쏘인 곳 주위에 임파선이 부어오른다. 이런 증상이 생긴지 5일째에 몸통에 붉은 반점이 시작되어 다리로 퍼져가며, 결막충혈이 생길 수 있고 간이 커지고 부종이 생길 수 있다. 발병한지 2주가 지나면 열이 떨어지고, 합병증만 생기지 않는다면 회복된다.
우리나라의 가을에 유행하는 급성 열성 출혈성 질환의 약 30%를 차지하며, 유행성 출혈열이나 렙토스피라증 보다 약 3배 정도 많이 생기는 병이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았을 때에는 사망할 수도 있지만, 항생제로 치료가 잘되는 병이다. 예방하는 방법은 진드기의 애벌레에 물리지 않기 위하여, 수풀 속이나 밭에서 작업할 때에는 토시, 장갑, 장화를 착용하고, 작업 후 휴식을 취할 때에도 풀밭에 그냥 앉지 말고 꼭 깔개를 깔고 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예방주사는 아직 없다.
◆ 결론은 이렇다
가을 추수기에 감기나 독감처럼 시작되는 열성 질환 중에 이상과 같은 고열을 나타내고 상당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이상의 열성 질병은 초기에 잘 구별이 안 되고 치료가 늦어지면 합병증이 많이 생기거나 위험할 수 있으므로 바로 병원에 가서 혈청검사를 받아서 정확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또 한국형 출혈열과 렙토스피라증은 예방주사가 개발되어 있으므로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이나 농촌을 찾는 도시인들은 유행시기 전인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예방접종을 해 두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감기 같더라도 열이 나서 2일 이상 계속될 때에는 꼭 병원을 찾아가 제대로 진단을 받아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 [경희의료원 가정의학과 교수]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