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정권이 54년간 주인행세를 하며 곁눈질만 해온 동아시아가 일본 차기 정권의 정책 화두가 될 전망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 대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가 동아시아로 눈을 돌린 건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별 볼일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를 불러왔고 인간성의 기본인 '박애'정신을 말살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는 동아시아지역 각국도 크게 이의를 달게 없다. 같은 이유로 한·중·일 3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을 위한 논의를 심심치 않게 벌여왔다. 논의의 큰 축은 유럽연합(EU) 형식의 지역 경제 통합으로 하토야마의 구상과 대동소이하다.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 초기 숨을 고른 뒤 공동체 창설 논의가 본격화하면 '동아시아경제공동체' 시대가 열릴 날도 머지 않았다.
◇하토야마 '동아시아 구상' 내용은
하토야마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는 크게 두 가지 전제가 달려있다. 그 중 하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크게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야스쿠니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공약에 명시했다.
일본과 여타 동아시아지역 국가들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입장이었던 만큼 이 문제는 동아시아 통합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하토야마는 아울러 아시아 공통 통화 창설 방안도 제시했다. 민주당은 아시아 공동통화를 10년 내 마련한다고 못박았다. 아시아 공동통화에 대한 논의는 이미 지난 2006년 한·중·일 재무장관회의에서도 논의된 바 있지만 지난해 불거진 금융위기로 논의가 중단됐다. 하지만 한·중·일과 대만, 아세안을 아우르는 아시아·태평양 경제가 세계 경제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경제 통합이 전제되면 역내 통화에 대한 논의도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밖에 민주당은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교섭도 촉진하기로 했다. 또 아시아·태평양 국가 등을 포함한 세계 각국과 투자 노동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모두 동아시아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들이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미래는
동아시아 각국이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만큼 통합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기후변화협약과 녹색산업 육성 등 공동 과제가 산적해 통합에 따른 시너지효과도 주목된다.
하지만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이 실제로 지역 국가들의 공동이익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토야마의 구상이 '발 등의 불' 끄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외교'를 펼치겠다고 한 것도 결국 최대 우방인 미국이 중국과 거리좁히기에 나선 데 따른 긴박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미국 중국이 최근 'G2'로 불리며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자 새로운 무대가 절실해졌다는 지적이다.
일본 내수 경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경기침체로 선진국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수출 부문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신음 중이다. 또 초고령화와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시간이 지날 수록 내수시장 규모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지역 통합을 통한 내수시장 확대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일본이 최근 중국이나 인도 등과의 경제 협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때문에 하토야먀 정권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현실화하려면 통합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하토야마가 과거사 문제 등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는 등 동아시아 통합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경험이 없는 데다 자민당이 닦아놓은 정치적 토양이 워낙 견고해 변화를 이루기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