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대만대표인터뷰) 아시아의 화약고에서 차이완 시대로

2009-07-2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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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서라도 대만에 가고 싶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에 대해 류자오쉬안 대만 행정원장(총리격)도 "최고위급 대륙 지도자의 대만 방문이 성사된다면 기쁠 것이다. 원 총리의 대만 방문이 이뤄진다면 나도 답방할 용의가 있다"고 즉각 화답했다.
 
중국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원칙적으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며 현재 양안에는 전례를 찾기 힘든 '봄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China)과 대만(Taiwan)을 합성한 차이완(Chiwan)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중국의 거대 자본과 대만의 첨단 기술력이 합쳐진다면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한국경제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대만과의 수교가 단절된 우리나라에서 대사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대사가 아닌 대표로 불리는 천용춰(陳永綽) 주한대만대표는 '차이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양안관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만의 13년차 외교관인 천용춰 주한대만대표를 지난 22일 만나 양안관계와 한국-대만관계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한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고 현재까지 한국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지요?
 
3년 전 주한대만대표로 부임하면서 처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3년간 한국이 참 편리한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노래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 고국이나 고국의 음식이 그립지는 않으신지요?

주로 아내가 요리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먹고 싶은 대만 음식은 따로 없지만 한국에서는 다양한 열대 과일을 구하기 힘들어 대만에서 나는 과일을 먹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중국 대륙인들도 대만에 가면 여러 종류의 음식문화를 즐길 수 있다고 평하는 경우가 많죠. 또 물가가 전반적으로 한국보다는 싼 편에 속해 저렴한 가격으로 온천이나 골프도 즐길 수 있어 대만 여행을 추천해 드리고 싶군요. 일월담과 같은 대만의 여러 관광 명소가 몇 년전 크게 유행했던 SBS의 '온에어'라는 드라마에서도 소개된 바 있어 대만은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에 거주하시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을 꼽으라면?

여행을 할 때 느낀 점입니다만, 도로 표지판이 한국어와 영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중국인 방문객 뿐 아니라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한문 혼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마잉주 총통 집권 이후 양안관계가 급물살을 타며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른바 ‘차이완(Chiwan)’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중국과 대만의 정치, 경제, 사회적 통합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양국의 전반적인 교역 현황이나 경제정책의 흐름은 어떻게 변했는지요?

지난 2008년 5월 20일 정식 취임한 마잉주 총통은 양안관계 회복을 위해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활로외교(Flexible Diplomacy)이고 다른 하나는 양안화합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중국과 대만은 불필요한 경쟁으로 인해 자원 소모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양측 모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소모적 경쟁을 줄이고 양안관계가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현재 우리 정부는 활로외교를 통해 상호 신뢰를 쌓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양국의 협력관계를 높이는 데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정부는 1992년 싱가폴에서 가졌던 양안회담에서 나온 합의를 바탕으로 양안화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당시 양측은 '하나의 중국'은 인정하되 중국과 대만이 각자의 명칭을 사용해 설명은 각자에게 맡긴다는 원칙의 '92공식'에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정부와 중국은 현재 3차례의 양안회담을 실시해 9개의 협정문과 1개의 공동선언문이라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직항로, 식품 안전, 사법 공조, 금융 등의 양측 국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9개 부문의 협정을 체결했고 대륙자본 허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선언문도 채택했습니다.
 
지난 60년간 양안 경제교류는 주로 대만이 중국 본토에 자본을 퍼다 주는 식이었습니다. 이는 지난 정부가 대만 자본이 중국 대륙으로 투자되는 것은 허용했지만 역으로 중국 자본이 대만으로 오는 것은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공동선언문 채택으로 대륙 기업의 대만 투자와 양안 간 산업협력이 강화되면서 양측의 경제무역 관계정상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는 좀 더 개방적인 태도로 대륙 자본을 허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상호 이해와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양안관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2년 간의 계속적인 노력의 성과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실제 1987년 양국간 친인척 방문을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무역과 투자를 개방했고 양국민들의 자유로운 혼인도 허용했습니다. 이러한 통혼으로 현재까지 약 30만쌍의 양안부부가 탄생했습니다. 또 현재는 양안간 관광 교류 증진을 위해 올해 안에 각각 상대방 지역에 관광대표사무소를 설립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비단 현재 대만정부의 노력만이 아니라 22년간 양안의 끊임없는 소통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이러한 양안관계의 개선으로 인해 한국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근 양안관계 개선으로 인해 특히 한국의 LCD 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한국의 언론보도를 접했습니다.
 
최근 대만 LCD 제품의 중국 시장내 점유율을 높이게 된 것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중국정부가 실시하는 가전하향(家電下鄕) 프로그램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농촌거주자는 가전 제품 구입할 때 중국 정부로 부터 보조금을 지급받게 됩니다. 대만 LCD업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가전제품을 중국시장에 수출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기성 시장의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 삼성LCD의 경우 전세계 시장 점유율 33%로 업계 1위를 지키고 있어 양안관계 회복으로 인해 한국LCD 업계 전체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대만과 한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이렇게 경쟁하기도 하지만 협력할 수도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의 대(對)중국 수출품 상위 20개 품목 중 14개가 중복돼 중화권인 대만기업에 비해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한국언론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저가제품이나 하드웨어 위주로, 한국은 고가제품이나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경쟁부문이 달라 차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대만과 한국이 중국시장에서 서로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만은 중국과의 문화적, 언어적 공통점을 기반으로 마케팅 부문에서, 한국은 뛰어난 인력과 기술력으로 연구·개발(R&D)부문에서 각국의 역량을 발휘해 중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적 교류에 힘입어 양안의 정치적 관계는 얼마나 개선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시아의 두 개의 화약고를 말할 때 하나는 남북한, 다른 하나는 양안이라고 꼽을 만큼 과거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대치적 상황이었습니다.
 
마잉주 총통 이전의 민진당 집권 시기에는 최악으로 치닫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대만정부의 1차 목표는 양안간의 신뢰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를 위해 우리정부는 우선 쉬운 것 부터 해결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해결하자는 선이후난(先易後難)과 경제관계를 먼저 개선한 후 정치관계를 개선한다는 선경제후정치(先經後政)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대만은 같은 민족에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60년간의 오랜 분단으로 인해 양국의 차이는 심화됐고 대화마저 차단된 상황에서 정치적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명목상 양안회담은 민간 차원의 교류이지만 상당수의 정치관료들이 참여하고 있어 양국의 정치적 관계 개선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렇게 양안관계는 호전되고 있지만 1992년 한국과 중국간 수교가 이뤄지면서 대만과는 국교를 단절해 한국과 대만의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1992년 한국과 대만의 단교이후 양국의 무역교류는 오히려 더 활발해졌습니다. 양국의 무역규모는 1992년 30억 달러에서 2008년 기준 219억 달러로 7배 이상 증가, 양국은 서로의 5대 무역상대국입니다. 또 2004년 직항노선 개설과 비자면제 협정으로 지난해 양국 관광객은 약 61만명에 달합니다. 실제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의 양국 관계는 오히려 더 밀접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의 교류는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한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정책'으로 인해 대만과 한국의 고위급 관료간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경우 상무부 장관 등 고위급 관리가 대만을 잇따라 방문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경우 차관급은 물론 국장급 관리조차도 대만 방문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중국정책으로 인해 한국정부와 대만정부간의 교류가 극히 제한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양안관계가 좋아지고 있는 만큼 한국정부가 좀 더 개방적인 태도로 대만과의 정치적 관계를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보는 한국을 한 단어로 정리하신다면?
 
놀라움(Incredible)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이명박 한국 대통령은 취임 3개월만에 18개 부처를 15개 부처로 축소하고 공무원도 대폭 줄여 작은 정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경우 지난 10년동안 정부 조직을 개편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보상태입니다. 공무원 축소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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