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명단도 받지 못하고 하는 회담이 어디 있느냐. 논의나 협의를 위한 회담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를 듣는 자리일 것이다.”
전직 통일부 관계자가 현정부 들어 첫 남북 당국간 개성접촉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저녁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의 예상대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당국자 간의 첫 회동으로 기록된 21일의 '개성 접촉'은 현안에 대한 협의 없이 각자 입장만 통보한 채 22분 만에 끝났다.
모처럼의 남북 당국자 접촉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길 염원했지만 결실은 없었고 개성공단 사업은 그야말로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통일부 내부에선 현 정부가 대북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전·현 정부가 똑같이 북한에 대해 3가지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북한의 성명이나 노동신문 등의 내용을 보고 ‘말로만 벼랑 끝 전술을 펴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는 것이다. 2006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마지막 자위수단인 미사일을 쉽게 발사치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북한은 그해 7월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 정부 들어선 장거리 로켓도 쏘아 올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더 이상 없다’는 자만도 문제다. 햇볕·평화번영정책으로 이어진 ‘남북화해협력 10년 시대’의 결과물이 ‘한반도 안정’이었다. 때문에 이 시기 연평해전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지만 ‘라면 사재기’ 같은 동요는 없었다.
하지만 남북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다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다시 재발할게 뻔한데도 대안 마련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쌀 주고 돈 주면 북한은 협상에 응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선군정치를 표방하고 고난의 행군까지 이어왔던 북한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란 지적이다.
11시간의 기다림 끝에 이뤄진 짧은 만남은 현재의 남북관계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 정부는 대북 정책의 원칙과 로드맵을 세우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함께 갖춰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안정이기 때문이다.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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