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보여주는 '공기업 선진화'의 길

2009-03-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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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요구에 맞게 정리할 줄 알았던 전방위적인 지식경영가였다. 현대가 필요로 하는 통합적 인문학자, 다산의 쾌도난마와 같은 명쾌한 작업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준다.” - ‘다산의 지식경영법’(정민 저·김영사) 중 저자의 말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공기업 선진화’를 핵심 정책과제로 설정했다. 지금까지 5회에 걸쳐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강도 높은 공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제금융위기 △관련법 개정 연기 △낮은 정권지지율로 인한 추진동력 상실 등으로 공기업 선진화는 좌초될 위기에 있다.

모순과 부조리가 절정에 달했던 18세기의 조선. 그 역사의 현장에서 실학이라는 학문을 완성한 다산 정약용. 방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활용한 그의 ‘지식 경영법’이 오늘날 난마처럼 얽힌 공기업 구조조정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명확한 목표관리와 체계적인 단계 수립
다산이 쓴 '식목연표의 발문'(跋植木年表)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정조가 화성 신도시 건립에 착수한 뒤 수원, 광주, 용인, 과천, 남양 등 여덟 고을에 나무를 심도록 한 후 지속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 1789년부터 1795년까지 7년간 보고된 문서의 양이 수레에 가득 싣고도 남을 지경이 됐다. 방대한 양으로 내용 파악이 어렵자, 정조는 다산에게 보고문서를 정리하고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다산은 가로로 열두 칸(7년을 12차로 배열)을 만들고 세로로 여덟 칸(여덟 고을을 배열)을 배치하여 칸마다 그 수를 적었다. 결과를 헤아려보니 소나무, 노송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나무가 모두 1200만 그루였다. 수레에 가득 실어도 넘칠 지경이던 그 많은 서류를 다산은 단 한 장의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는 작업의 핵심가치에 맞게 자료를 나누고 분석한 다산식 지식경영의 결과이다. 

공기업에 대한 정확한 실사작업와 그에 따른 적절한 분류. 이것을 바탕으로 작성된 '공기업 선진화 로드맵'. 로드맵에 따른 치밀한 세부계획. 다산의 경영법은 현재 공공기관운영법에 의해 지정된 300여개에 달하는 공기업의 선진화라는 당면과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여전히 유효하다. 

◆효율적인 작업 진행과 조직적인 역할 분담
다산은 방대한 양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익히는 데 있어서 유용한 공부법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공기업 선진화와 관련해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다산이 제시한 공부법에는 '지기췌마법'(知機揣摩法)이 있다.  문제가 발생한 뒤에 대처하면 너무 늦기 때문에 기미(낌새)를 분별하고 미루어 헤아리라는 뜻이다.  국가경영의 틀을 제시한 '경세유표'에서 다산은 평소 경험한 백성들의 삶을 바탕으로 실천적 대안을 미리 제시했다. 
 
또한 '분수득의법'(分授得宜法)이라는 다산의 공부법이 있다. 이는 구성원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효율성을 극대하라는 의미이다. 다산은 제자들을 각각 주제분류, 교정, 제본 담당 등으로 역할을 나눠 일사분란하게 저술 활동을 진행했다.

공기업 선진화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또한 한 개인이나 부처가 감당하기에도 방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진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추진동력의 상실로 용두사미가 될 경우도 있다. 정부는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역대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의 사례를 활용, 흐름을 읽고 핵심적인 사항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다산의 지혜가이 필요하다. 또한 당·정·청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팀워크로 추진동력을 유지해햐 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의 저자 정 민 한양대학교 국문학과교수는 "그동안 다산의 저작들은 공직자 윤리나 행동강령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됐다"며 "이제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하나의 방법론으로 다산의 저작들을 바라봐야 한다" 고 말했다. 또한 "다산의 지식경영법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대해서 훌륭한 대답을 줄 수 있다" 고 덧붙혔다. 

다산의 사상체계와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정민 저·김영사) ' 다산1·2'(한승원 저·랜덤하우스코리아) '새로운 유학을 꿈꾸다'(김우형·이창일 공저·살림출판사) '다산 정약용과 아담 스미스'(박흥기 저·백산서당) 등이 있다.

김병용 기자 ironman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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