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달러 조달을 위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표시 채권의 일부를 국내 보험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사들인 것으로 나타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국책은행의 고금리 채권을 매입하는데 투입한 달러는 한국은행과 정부가 시중의 외화유동성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은행에 공급한 외환보유액의 일부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에 산업은행은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 금리에 6.15%포인트를 더한 금리로 미화 2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5억 달러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배정됐다.
앞서 수출입은행이 5년 만기, 8.125%의 고정금리로 발행한 달러화 채권 20억 달러 가운데 1억 달러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사들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해외 채권 발행 때 보험사, 자산운용사, 국민연금 등 국내 투자자의 참여 비중이 상당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마땅한 자금 운용처가 없는 기관들이 높은 금리를 보고 투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해외 채권 발행은 작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장기 외화조달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달러 조달을 위해 국책은행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을 국내 금융기관이 다시 달러를 주고 사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외화조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은 국내 은행들과 원화를 주고 달러를 받는 스와프 거래를 통해 달러를 조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권매입에 들어간 달러의 출처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즉 한은이 외화대출과 스와프 경쟁입찰 방식으로 은행에 달러를 공급하면 은행은 스와프 거래를 통해 다시 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에 제공했고, 이들 기관은 이 자금을 이용해 해외 채권을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이 국책은행의 외화표시 채권을 사들였다면 필요한 자금은 환위험 회피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스와프 방식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외국 기관보다 산은이나 수출입은행을 더 신뢰할 수 있고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 참여했을 것"이라며 "산은 입장에서는 국내 기관이든 외국 기관이든 참여가 높을수록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책은행이 달러조달을 위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했는데 알고보니 이를 자국 금융기관이 샀다는 것은 법적인 문제는 없겠지만 우스운 상황"이라며 "자금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지만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외화조달 의미가 퇴색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