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1년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주가 성적표는 빗나가 보인다.
이 대통령이 2007년 12월 대선 후보 당시 "정권교체가 되면 내년에 주가 3,000을 돌파하고 임기 내에 5,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때만 해도 증시에 대한 시중의 기대는 장미빛 일색이었다.
시장지향적, 기업친화적인 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 회복과 자본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를 키웠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호의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한 임원은 "기업규제 완화와 공기업 개혁,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 등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해외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약속으로 비쳐졌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집권하기 직전부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광풍'은 이런 기대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라는 생소한 금융용어가 언론을 뒤덮는가 싶더니 심각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은 외국인의 `셀 코리아(Sell Korea)'를 촉발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작년 1월부터 3월까지 석달 간 국내 증시에서 10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이 대통령 취임일인 2월25일 1,709.13이던 코스피지수는 3월에 1,500대까지 주저앉았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금융시장 안정책을 내놓으면서 국내 증시도 5월엔 지수 1,900선을 터치하는 등 시장이 잠시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전 세계 경기가 본격적으로 악화되고, 우리나라의 외화 유동성 부족이라는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증시는 수직급락해 10월 말에는 코스피지수가 장중 9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당시 투자자들 사이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언급했던 `코스피 500'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통화완화정책이 쏟아져 나오자 시장은 겨우 안정을 되찾아 이달 19일 현재 지수는 1,107.10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증시 급락 여파로 국내 주식형펀드의 순자산 규모는 이 대통령 취임일 당시 73조원에서 이달 17일에는 54조원으로 줄어들어 투자자들이 무려 19조원을 허공에 날린 셈이 됐다.
취임 이후 1년 동안 코스피지수가 600포인트가량 폭락한 것이 초라한 성적표임은 분명하지만, 증시 폭락의 주요인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대응보다는 외부 악재에서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은행 부실화, 심각한 경기침체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현상이었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가 지난해 폭락했다는 사실은 가혹한 외부 환경이 국내 증시 폭락의 주요인임을 보여준다.
대우증권 조재훈 투자전략부장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어느 곳도 없었으며, 증시가 50% 이상 폭락한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 비한다면 오히려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증시 전망을 내놓았던 점이나 정부가 환율정책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 점, 경기부양책을 신속하게 집행하지 못한 점 등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촛불집회가 정국을 어수선하게 하던 작년 6월 초에는 한 외국계 증권사가 "이명박 대통령은 `불도저'보다는 `말(馬)장수'(horse trader.능란한 흥정꾼)가 돼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혼자서 밀어붙인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요 정책을 놓고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정치적 리더십을 유지하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아직 경기회복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부의 발빠른 대응만이 증시의 추가 폭락을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 유럽 등의 경기침체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동유럽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까지 불거지는 등 글로벌 신용위기와 기업이익 급감, 심각한 제품 수요 감소 등은 증시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소비자들의 제품 수요가 살아나야만 기업 이익이 증가하고 증시도 회복될 수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개인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 그럴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신속한 경기부양책의 집행과 강도높은 구조조정 추진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조선, 해운, 건설, 자동차 등 부실이 쌓여가는 업종의 구조조정을 정부 주도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집행해야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기업 이익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증시 회복을 꾀하기가 쉽지 않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 집행이나 구조조정 추진, 외환시장 안정 등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기업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진행돼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전 세계 경기가 회복을 앞둔 시점에서는 증시도 탄력있게 회복돼 2007년의 고점인 코스피지수 2,000선마저도 넘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종현 리서치센터장은 "집권 2,3년차인 올해와 내년에는 증시 전망이 다소 불투명하지만 정부의 경제대책이 효과적으로 발휘된다면 세계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집권 후반기에는 상당히 탄력적인 증시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