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만기도래하는 은행권 외채가 100억 달러나 되는 데다 회계결산을 앞둔 일본계 은행들과 배당금을 받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을 이탈하면서 금융위기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물경제의 추락 속도가 1분기에 가장 빠르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떠도는 이른바 '3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기우'로 보면서도 북한 문제 등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서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들을 미리 파악하고 철저히 대비해 자금이탈 요인이 많은 올 봄을 무사히 넘기면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서 5~6월쯤 금융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환율.CDS프리미엄 급등
1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일 1,404원을 기록하면서 작년 12월9일 이후 두달만에 1,400원대로 올라왔고 13일에도 1,400원대를 유지했다.
환율은 작년 11월24일 1,513원으로 치솟은 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달러화 매수 자제 당부 등 노력으로 작년 말 1,259.50원까지 급락했지만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달 2일 1,320원대로 급반등했고 최근 외국인의 증시 이탈 등의 여파로 1,400원대로 복귀했다.
외평채 가산금리와 은행권 CDS 프리미엄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외평채 5년물 가산금리는 작년 10월에 7.91%까지 치솟았다가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이후 하락 안정세를 보이며 작년 말에는 3.40%까지 내려갔으나 이후 다시 상승, 지난 12일에는 3.55%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12일 기준 5.80%로 9일의 5.16%에 비해 0.64%포인트가 뛰었고 국민은행은 4.06%에서 4.57%로, 신한은행은 4.65%에서 5.13%로, 하나은행은 4.73%에서 5.12%로 각각 올랐다.
CDS 프리미엄은 신용파생거래의 수수료로, 금융회사 등의 파산 위험에 대한 보험료 성격이다. 따라서 높을수록 신용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보다 가산금리가 내려가기는 했지만 지금도 국내 시중은행들이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신용경색 현상이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 떠도는 3월 위기설
올해 만기도래하는 은행권의 순수 대외채무는 350억 달러(해외점포 차입 제외)이며 다음 달 만기도래 규모는 100억 달러 안팎이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사태로 세계적 신용경색이 심화됐던 작년 11월 만기도래분 190억 달러보다 규모가 작지만 분기 말 영향으로 올해 1, 2월에 비해서는 늘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작년 10월 이후로는 은행들이 만기도래 채무를 1개월 미만 단기차입으로 막는 경우가 많아 전체 대외채무보다 월별 만기도래 채무규모가 크다"고 설명했다.
자금조달의 단기화 때문에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외부충격이 올 경우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최대 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작년 역대 최대 규모인 416억 달러의 적자를 내는 등 금융기관의 손실이 커지고 있으며 러시아는 자본 유출 확대와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10년 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은행들의 외화 수요가 늘어나는 다음 달에 국제금융시장 경색으로 외화조달 사정이 악화되고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금융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본격적인 경기 하강 가능성과 한반도 내 지정학적 긴장감 고조 등도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다음 달 만기도래 국채규모는 위기설이 불거졌던 작년 9월의 3분의 1 수준이나 은행권 차입금 상환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최근 우리은행이 3억 달러 규모의 해외 발행 후순위채에 대해 콜옵션(조기상환권) 행사를 포기한 것이 은행 대외차입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대외적으로 유럽계 금융기관들의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 위기설 기우..대비는 필요
그러나 외화조달 여건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본 금융기관들이 회계연도가 끝나는 다음 달 말을 앞두고 자금을 회수하면서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라는 지적이다.
국내 은행의 총 엔화 차입금은 약 130억 달러(해외점포 차입 포함)이며 이중 다음 달에 만기도래하는 규모는 10억~20억 달러 정도로 은행들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작년 10월 이후 정부가 통화스와프 체결과 외화보유액을 통한 유동성 지원 방식으로 달러를 공급한 데다 최근 수출감소 영향으로 무역금융도 줄어 은행권의 외환 사정이 개선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작년 12월 말 기준 3개월 외화유동성 비율이 100% 수준이어서 은행권의 외화유동성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올해 들어 만기 1개월 이상 대외차입도 1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작년 4분기에는 1개월 이상 대외차입이 사실상 막혀 있던 것에 비해 외화차입 여건이 개선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외화조달 여건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문제 등 돌발 변수가 생길 경우 시장 불안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는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 달 금융위기 가능성이 기우로 판명나면 금융시장의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수준의 악재가 또다시 나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각종 경제지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 충격이 오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며 "돌발 변수들이 시장에 심리적인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미리 단속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 연구위원은 "배당 시즌 등으로 자금이탈이 많은 3, 4월을 잘 넘기면 5, 6월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1분기를 어떻게 방어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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