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료기기시장 긴급 점검] 수십억 MRI 기기, "가격은 아무도 몰라"

2009-02-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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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0세인 정 모 씨(여)는 지난달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법(MRI) 검사를 받고 깜짝 놀랐다. 여성질환을 검사하기 위해 병원의 권고대로 MRI 검사를 결정했지만 비용이 80만원대에 육박할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MRI도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해서 나름대로 마음을 놓고 있다가 예상보다 높은 금액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정 씨는 병원 측에 검사 비용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지만 의료수가와 보험정책 등 어려운 말만 되풀이해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정 씨는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MRI 장비 가격이 얼마나 하길래 이렇게 비싸냐"고 병원 측에 물었지만 대답은 "알려줄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서비스 제공자인 병원이 소비자인 환자에게 의료기기의 가격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정 씨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제약업체들의 리베이트 관행을 적발했다는 뉴스가 머리에 떠올랐다.

"혹시 의료기기시장에도 공개할 수 없는, 공개해서는 안되는 부적절한 관행이 있는 것 아닐까?"

◆의료업계, 가격 공개 의무 없어=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고가의 의료검사는 병의 유무를 파악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사진: MRI를 비롯한 고가의료장비시장에서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매년 수많은 환자들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질병을 확인하기 위해 MRI 검사를 받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병원은 의료기기 가격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MRI 등 고가의 의료기기 가격은 기기를 구매한 병원과 판매한 업체만 알 수 있다. 의료기기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와 업체간 불공정거래를 단속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고가 의료기기 가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제약업체들의 리베이트 관행을 적발해 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철퇴를 가한 가운데 의료계 종사자들은 제약도 문제지만 고가의 의료기기 부문에서도 상당한 리베이트가 오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어렵지만 의료기기시장은 매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힘들어도 의료산업의 수요가 크게 줄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기가 힘들 수록 생활고에 시달리는 정신적·육체적 환자들은 늘어나게 마련이며 그만큼 의료기기의 수요 역시 증가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의 '2008 의료기기 제조·수입·수리업체 편람'에 따르면 생산과 수출입을 포함했을 때 국내 의료기기시장 규모는 약 3조원(2007년 기준)을 돌파했다.

국내의료기기시장은 2001년부터 꾸준히 평균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5~7% 정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다.

아직 고가 장비를 중심으로 국내 의료기기시장이 취약한 만큼 성장 가능성은 더욱 높다는 것이 정부는 물론 업계의 전망이다.

◆MRI 장비 가격 수십억원, 유통은 철저히 비밀=전문가들은 물론 의료계 관계자들은 국내 의료기기시장에서 불공정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평택에서 개인병원을 운영 중인 근 모 씨는 "제약업계에 대한 불공정거래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지만 의료기기시장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MRI나 CT장비 가격이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문제는 유통 과정 자체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의 박희병 전무는 "현재 MRI 등 고가 검사와 진료는 의료보험에 등재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러나 유통 과정은 파악할 수 없다. 의료기기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무는 일반적으로 의료기기시장의 유통 구조 자체가 보수적이라면서 "병원의 구매담당자가 공개입찰을 원하더라도 의사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의료기기 담당자가 구매를 추천해도 의사들이 사용 자체를 거부하면 기기를 구매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자칫 리베이트가 오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의료기기시장에 대한 불공정거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다국적기업들이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의료기기시장을 다국적업체들이 점령하다시피 하면서 투명한 정보공개 요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약제나 재료들은 고시나 실거래가로 리베이트 검증이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사실상 고가 장비에 대해서는 리베이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비팀의 문희경 차장은 "MRI의 경우 독일 지멘스가 독점하고 있으며 GE와 필립스, 히타치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기기 가격에 대한 기준선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병원들은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에 의해 장비를 구입할 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고해야 하지만 장비 가격을 의무적으로 밝히지는 않아도 된다.

MRI 장비를 구입하더라도 주변 기기와 관련 프로그램 등의 가격을 포함시켜서 신고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 세금신고서를 통해 구매 물품 가격의 합을 알 수는 있지만 개별 기기에 대한 가격은 알 수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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