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께선 14조원이나 들여 포기하겠다는 대운하를 부활시키는 겁니까?”
지난달 26일 일촉즉발의 국회 6층 예결위 회의장에서는 한 여성의원의 발언이 낭랑하게 이어졌다. 이 야무지고도 담대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다.
국토해양부 문건을 토대로 최 의원이 폭로한 ’대운하 부활’ 논란의 여파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최 의원의 활약상은 도저히 초선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다.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보건복지위 소속으로서 식약청의 미회수 멜라민 제품을 폭로, ‘멜라민 파동’의 중심에 서 있던 것도 그다.
이러한 최 의원 특유의 부지런함은 굴곡 많았던 그의 지난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7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당시 언론인을 지향했던 꿈 많은 여대생 최 의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에 언론은 정권의 나팔수였다”며 희망사항을 접은 최 의원은 노동전선에 뛰어들어 인권 바로세우기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와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것도 수차례였다고 한다.
90년대 초 마침내 내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이 됨으로서 소싯적 꿈을 이룬 듯 했지만 최 의원의‘진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국내 최초로 청소년성교육 센터 개소와 함께 국가청소년위원회를 출범시켜 청소년과 노동자들을 위한 전도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당시 최 의원은 매일 2~3시간 수면밖에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 의원의 부지런함은 18대국회 들어서도 진가가 발휘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편안함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항상 이렇게 강조한다. “지금까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길을 가려는 후배들이 내 발자국을 보고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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