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따른 은행들의 부실을 사전에 막고 기업 대출 여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다.
정부는 이를 위해 시중 자금을 모아 은행 후순위채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 은행의 자본을 늘려주고 부실 채권 매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연말까지 11~12%, 기본자기자본비율은 내년 1월 말까지 9%로 끌어올려야 하지만 일부 은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펀드 통해 은행자본 수혈
17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가 16일 내놓은 내년 경제운용 방향에서 "필요시 시중 여유자금을 후순위채, 상환우선주 매입 등 은행의 BIS 비율 제고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 같은 현실론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은행들의 BIS 비율은 평균 10.79%, 기본자기자본비율은 평균 8.28%다. 현재 은행들이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자체적인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만 않은 상황이다. 기본자본의 경우 11조 원을 늘려야 하지만 지금까지 3조 원 정도를 마련하는데 그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와 일반 투자자, 국책은행의 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해 은행 후순위채와 상환우선주 등을 사들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펀드 규모는 5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연말과 연초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현물과 현금을 포함해 3조3천500억 원을 출자할 계획이어서 국책은행의 자금 여력이 생겼다.
다만 국책은행들은 정부의 출자액을 기업 대출에 주로 사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시중은행에 출자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현행법상 한국은행은 산업은행에 싼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거나 수출입은행에 출자할 수 있다.
은행들의 연말 기준 BIS 비율의 잠정치가 내년 1월 중순부터는 나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본격적인 자본 확충 지원은 이때를 기점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추가적인 지원을 위한 제도 정비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기본자본의 15%로 제한된 하이브리드채권의 발행 한도를 일시적으로 30%까지 높여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이브리드채권은 부채와 자기자본의 성격이 혼합된 신종 자본증권으로, 매년 확정 이자를 지급하며 만기와 상환 의무가 없다. 은행들은 이 채권을 발행하면 자기자본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 발행 한도를 올려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은행이 부실화되기 전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예금자보호법을 고치는 방안도 있다. 지금은 은행의 BIS 비율이 8% 아래로 떨어져 부실 판정을 받아야 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을 수 있다.
◇ 금융사 부실채권 매입 확대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금융기관 부실채권 매입도 확대된다.
정부는 내년 경제운용방향에서 캠코를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채권과 주택담보인정(LVT) 비율이 과다한 주택담보대출 채권의 매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년 초에 캠코에 4천억 원을 증자하는 것도 이런 목적이다.
경기 침체로 부동산 가격이 추가 하락하면 이들 대출의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기관이 보유한 PF 대출 채권의 규모는 79조 원으로 이중 은행이 48조 원, 저축은행이 12조 원이다.
또 LTV 수준은 은행 40~60%, 저축은행 50~70%으로 2006년 이전에는 최고 80%에 달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230조 원 가운데 LTV가 60%를 초과하는 대출 규모는 전체의 13.1%인 30조 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LTV가 60% 이상인 주택담보대출은 경기 악화로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저축은행 등의 2금융권의 대출 중에서는 신용등급이 안좋은 대출자가 많고 연체율도 높다"고 말했다.
캠코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채권 매입은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아니지만 비상대책에 따라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캠코는 연말까지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 1조 원어치를 사들여 BIS 비율을 높여주기로 해 금융회사의 부실을 털어내 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 지원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