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실물경기가 본격적인 하강 국면을 맞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와 한국은행, 국책은행 등이 전방위 금융지원에 나서고 있다.
국책은행들은 중소기업과 수출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규모를 내년에 대폭 확대하고 이중 60% 이상을 경기 침체의 골이 깊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반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정부는 대출 보증금액과 보증비율을 늘리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경기 추락을 막기 위해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과 경기 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자금을 풀어 숨통을 터주고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일단 금융권 자율에 맡기고 살릴 수 있는 기업은 최대한 살리겠다는 뜻이다.
◇ 중소.수출기업 집중수혈..국책銀 89조 공급
정부는 경기 위축과 자금사정 악화에 따른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은행들이 내년 상반기에 가능한 많은 자금을 풀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중소기업과 수출기업 등에 대한 3개 국책은행의 내년 자금 공급액은 89조 원으로 올해 75조 원보다 18.7% 늘어난다. 이들 은행이 자체 마련한 계획으로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더 늘어날 수 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 규모를 올해 26조 원에서 내년 32조 원으로 늘리고 이중 60%를 상반기에 배정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은 같은 기간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21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확대한다.
산업은행은 자금 공급 규모를 올해 28조 원에서 내년 32조 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중 내년 중소기업 지원은 12조 원으로 올 한해 계획한 것보다 4조 원 증가한다.
사실상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우리은행은 내년 중소기업 대출을 올해보다 6조 원 정도 늘리고 내년 상반기까지 대출금의 만기 연장과 분할 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내년에 중소기업에 올해보다 2조 원 이상을 더 공급하기로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정상 기업에 대한 대출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릴 계획으로, 상반기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 中企대출 보증 100%로 확대 검토
정부와 한나라당은 11월19일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 비율을 85%에서 95%로 확대한 데 이어 100%로 늘리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한시적인 100% 보증을 실시할 경우, 중소기업이 신용보증서를 가져오면 은행이 쉽게 중소기업 대출을 해 주게 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보증비율 100% 확대는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을 봐가며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며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이나 보증기관의 손실 우려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이달 중순부터 보증기관을 통해 중소기업의 수출 자금에 한해 보증 한도를 기업당 3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확대하고 보증비율도 100%를 적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국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본도 확충하기로 했다. 내년 예산으로 산업은행에 5천억 원, 기업은행에 5천억 원을 출자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이달 안에 산업은행에 5천억 원, 기업은행에 5천억 원, 수출입은행에 6천500억 원을 현물 출자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 은행의 대출 여력이 16조 원 이상 늘어난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기업은행에 5천억 원을 더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하면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신보와 기보에 5천억 원을 추가 출연해 보증 규모를 올해 42조 원에서 내년 48조 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출연금이 7천억 원 이상으로 증액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내년 보증 규모가 51조 원으로 커질 수 있다.
◇ 건설.차.반도체 등 위기업종 금융지원
정부는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이들 기업의 회사채를 묶는 프라이머리 담보부증권(CBO)을 지난달 27일 1차로 4천억 원 발행했을 때 건설사 회사채의 편입 비중이 10%에 머물렀다.
그러나 오는 11일 2차로 2천억 원을 발행할 때부터는 10% 이상으로 늘어난다. 프라이머리 CBO는 이달 말까지 1조 원, 내년에는 2조 원이 발행된다.
이르면 이번 주에 출범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가 건설사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도 사들이기로 했다. 자동차업계가 내수 촉진 방안의 하나로 할부금융사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건의함에 따라 채권시장안정펀드의 매입 대상에 할부금융채를 우선적으로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연말부터 건설사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유동화전문회사에 은행이 신용공여를 할 경우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건설업체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지원도 채권금융기관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주주협의회는 하이닉스에 대한 신규 대출과 제3자 배정 유상 증자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필요하면 직접 대안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신속 지원프로그램의 대상을 건설사 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업, 반도체, 석유화학, 섬유 등 10대 주력 업종의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은행들이 일시적 자금난에 직면한 중소기업의 신청을 받아 보증기관의 보증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통화파생상품 `키코'로 큰 손실을 본 중소기업 위주의 지원이 어느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앞으로는 일반 중소기업으로 지원 범위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 금리 인하로 경기 떠받친다
오는 11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현재 4.00%인 기준금리의 인하가 확실시되고 있다. 인하폭은 0.50%포인트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편이며 0.75%포인트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급속히 하강하는 경기를 감안할 때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성태 총재는 최근 "기준금리를 10월부터 1.25%포인트를 내렸는데 내년 상반기에 국내 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앞으로) 성장률이 상당히 내려갈 수 있다"며 금리 인하 기조를 시사했다.
지난달 26일 씨티그룹은 한은이 내년 중에 3%까지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중반까지 기준금리가 (2.5%로) 1.5%포인트 추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자산가격을 반영한 기준금리는 4분기 현재 3.5~3.6%로 0.5%포인트의 추가 인하 여지가 있다"며 "경기나 금융시장 환경이 더 악화될 경우 3.5% 이하로도 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하강으로 실물위축이 심화하면 한국은행이 유동성 지원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총액대출한도를 늘리고 수출입업체의 무역금융, 즉 달러화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