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6일 "미국 자동차산업이 죽으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잘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면서 미국 자동차산업의 회생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특파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미국 자동차산업이 잘되면 한국 자동차부품업체들의 수출이 늘고 미국 자동차산업이 잘된다 해도 한국 자동차를 수출할 여지는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 당선인과 민주당의 의회수뇌부가 연일 정부에 대해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제안 실행을 요청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등이 미 정부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보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14일 뉴욕 외교협회 연설에서 미국 자동차산업을 구제하는 것은 파멸로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오바마 당선인의 자동차산업 구제계획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지원이 부당한 보조금으로 간주될 경우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일본도 이에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온 게 사실이다.
특히 오바마 당선인이 선거유세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자동차협상 부문을 거론하며 "잘못된 협상이며 비준에 앞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점을 감안하면, 미 자동차산업 회생을 지지하는 이 대통령의 언급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국내 연관산업과의 실리를 따져 한미 FTA와 미국 자동차산업의 구제 문제에 대해 실용주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명확히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은 철저히 고속도로 중심이며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자존심이며 상징"이라면서 이런 미국 자동차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국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어 미국 자동차 산업이 잘 돼야 부품수출이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현재 GM대우와 쌍용을 비롯한 한국 자동차업체들은 수출부진과 내수위축으로 인해 조업단축에 들어갔거나 생산라인 폐쇄 등을 검토하고 있어 부품업체들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미국 자동차업계가 붕괴할 경우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공유와 부품납품 체계로 서로 맞물린 전세계 자동차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도 CEO출신의 이 대통령이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또 오바마 당선인이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산업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당선된 사람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선거유세때 오바마 후보가 발언한 것을 근거로 한미FTA에 대해 미리부터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후 제대로 정리된 정책이 나오고 나서 얘기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미 FTA에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는 점도 이 대통령은 지적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면서 대응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