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자금…부도공포 확산

2008-11-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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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전문 건설업체인 A건설의 자금담당 임원은 요즘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심정이다.

   2~3개 현장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만기가 돌아오고 있지만 제2 금융권에서는 만기 연장에 난색을 표하며 상환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늘어난 지방 미분양으로 인해 사내 현금은 씨가 마른 지 오래다. 다음달부터는 하도급 업체 대금 결제는 물론 직원들 월급이 제때 나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이 회사 임원은 "금융기관이 정부를 의식해 건설사 대출에 관대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은행 돈 빌리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그동안 회사 이미지 때문에 꺼렸던 대주단(채권단) 협약에 가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지만 그것으로 자금난이 해결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가 10년 전 외환위기 때 못지않은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미분양 매입, 재건축 규제 완화, 금리 인하 등 건설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묵묵부답이다. 실물경기 침체 우려가 경제 전반에 걸쳐 짙게 드리워진 까닭이다.

   이 가운데 지난 5일 시공능력평가 41위인 신성건설의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신청은 건설업계의 부도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침체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며 "올 연말을 넘기지 못하는 건설사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PF 부실 뇌관 터지나 = 건설사의 부도 위기 근간에는 2004년 이후 크게 증가한 PF 부실이 도사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6월말 현재 금융권의 PF 금융 규모는 총 97조1천억 원으로 이 중 대출이 78조9천억 원,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15조3천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은 연체율이 14%를 넘어서 건설경기 침체로 금융 기관마저 동반 부실화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굿모닝신한증권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의 신용 이슈'라는 보고서에서 신용등급 BBB- 이상 41개 건설사의 재무제표를 합산한 부채비율은 189%에 불과하지만 PF 우발채무를 포함한 수정 부채비율은 429%에 달한다고 밝혔다. 수정 부채비율이 1000%를 넘는 건설사도 7개에 이른다.

   PF 부실은 곧 금융기관, 금융시장 불안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어 국가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발주처가 관공사나 해외인 토목, 플랜트 공사를 제외하고 아파트 건설이나 대형 복합단지 개발 사업 등은 PF를 끼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라며 "대부분의 건설회사는 PF 대출을 받았거나 시행사 명의의 PF 보증을 선 상태여서 부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대형 개발사업이 많은 건설사의 경우 회사별 PF 보증채무가 4조~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PF 사업지 중 일부는 사업 추진을 중단했고, 공사가 진척된 곳도 미분양 증가로 자금회수가 어려워 대출금 갚 기가 어려운 곳이 적지 않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는 그나마 대출 만기 연장 가능성이 있지만 준공 후에도 미분양이 남은 악성 현장은 만기 연장이 쉽지 않다"며 "미분양의 공포가 단순히 건설사의 유동성 악화로 끝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건설사 부도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 대주단 협약으로 100대 건설사의 대출 만기를 1년간 연장해주기로 했지만 일부 회생 가능성이 작은 건설사는 대상에서 탈락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대주단에 가입한 회사는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끄겠지만 탈락한 건설사는 만기가 돌아온 대출 상환 압력을 받을 것이고, 추가 대출은 중단돼 사실상 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금융시장에는 K사, W사, C사, S사 등 7개사가 퇴출 대상에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어느 회사가 신성건설의 뒤를 잇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부도 공포 "하루가 힘들다" =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말까지 부도를 낸 건설회사는 총 328개사.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5개사 대비 47.1% 증가한 것으로 올 들어 거의 하루 한 개꼴로 건설사들이 간판을 내린 것이다.

   특히 증권가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대.중.소 건설사들의 부도 루머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일부 건설사들의 자금조달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까지 부도설, 화의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직원들의 불안도 극에 달한다. 이미 중견 건설사인 A사는 사업실적이 저조한 임원들과 부서장급의 구조조정에 나섰고, B사는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등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상당수 건설사는 이미 내년 인사를 앞두고 혹독한 구조조정과 임금 동결 등의 시련을 각오해야 한다.

   건설사들은 정부의 미분양 아파트나 공공택지 매입에 참여하고, 분양가를 인하하는 등의 방법으로 유동성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경제가 회복돼 건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H사 관계자는 "신규 수주는커녕 추진하고 있던 국내·외 주택사업마저 중단하면서 최근 몇 년간 호황기 때 채용했던 인력들이 남아돌고 있다"며 "임금 동결이나 삭감은 양호하고, 관리할 사업이 없어진 직원들은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정부와 금융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현재 건설사들이 흑자도산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PF대출시 시공사인 건설사들이 지급보증 등 채무에 대한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PF대출과 ABCP 등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선순환될 수 있도록 살릴 기업에 대해서는 만기연장과 차환발행 등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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