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30일 국내 금융시장은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환율은 11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하면서 1200원대로 내려앉았고 주가도 1000선을 다시 회복했다.
10월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세계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기로 하는 등 호재가 잇따른 것도 투자자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전문가들은 이번 통화스왑 체결로 미국의 '달러 우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돼 외화 자금경색이 풀리고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실물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어 국내 경제도 정상 궤도를 되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금융시장 불안 해소 기미 = 이날 원·달러 환율은 177원 폭락한 1250원으로 거래를 마쳤고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대 폭인 11.95% 치솟으면서 1084.72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도 11.47% 폭등하면서 296.05로 장을 마감했다.
한국과 미국의 통화스왑 체결 소식이 최대 호재로 작용했다. 이번 계약으로 국내 외화유동성 부족 현상이 완화되고 대외 신인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금융시장에 드리웠던 먹구름을 일거에 몰아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통화스왑 체결로 국내 금융시장에 퍼져있던 막연한 불안감이 진정될 것"이라며 "당분간 환율과 주가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10월 경상수지가 10억달러 이상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이어 유럽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 국제통화기금(IMF)의 신흥경제국 지원 방안 등 호재들이 쏟아진 것도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이날 외국환평형기금 5년물에 대한 신용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이 1%포인트 하락한 4.7%로 내려앉는 등 우리나라의 신용도도 크게 제고됐다.
◆ 300억달러 '외환보유고' 확보 = 한국은행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맺은 300억달러 통화스왑은 외화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미국에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를 들여올 수 있는 제도다. 한은이 원화를 마음대로 발권할 수 있는 만큼 우리로서는 외환보유액이 300억달러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달러를 빌려오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리는 하루짜리 달러 대출금리인 '오버나이트 인덱스 스왑'(OIS)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이광주 한은 부총재보는 "OIS에 조금 더 붙여 금리가 결정될 것"이라며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현재 3개월물 OIS는 0.8% 수준으로 한은의 통화스왑 금리는 3%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통화스왑 체결로 국내 외환보유액을 낭비하지 않고도 금융시장의 외화유동성 부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한중 및 한일의 양자간 통화스왑 확대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는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확보하게 된다.
이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미 통화스왑이 체결됐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양자간 통화스왑 확대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양자간 통화스왑 한도는 일본이 1300억달러, 중국 40억달러, 아세안(ASEAN) 65억달러 등 총 235억달러로 정부는 내년 5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구체적인 확대 규모가 확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경제침체 여전…정상화 시간 걸릴 듯 = 전문가들은 이번 통화스왑 체결로 자금시장 경색이 일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실물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최원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시장팀장은 "연말까지 환율은 1200원 이상으로 오를 것 같지 않고 주가도 1000선이 다시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환율이 안정되면 증시에서 외국인투자자들의 매도세도 주춤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팀장은 "다만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해 있고 내년까지 회복세가 더딜 것으로 예상돼 환율과 주가가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시장 안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재정지출 확대 등 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도 "한미 통화스왑 체결과 10월 경상수지 흑자 전환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며 "그러나 증시는 실물경제와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당분간 불안한 흐름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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