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직원들이 좀처럼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 대책과 은행들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잇따라 터지는 악재 때문에 영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 22일 시중은행장들이 모여 일종의 반성문을 제출한 것을 정점으로 은행권에 쏟아지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사기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달 들어 정부가 은행권 대외채무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 외화 유동성 직접 공급 등의 지원 방안을 내놓자 은행들도 임금 삭감, 비용 절감, 조직 축소 등을 약속하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각 시중은행의 일선 직원들은 "업무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져 일 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임금 동결 및 삭감이다. 시중은행들은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 임금을 10~20% 가량 삭감하면서 직원들도 자율적으로 임금 동결 및 삭감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겠다고 공언했다.
신한은행 영업점에서 창구 업무를 보고 있는 한 직원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임원 임금이 삭감됐지만 일반 직원들에 대한 임금은 아직 변화가 없다"며 "하지만 임금 협상이 코 앞이라 경영난이 지속될 경우 임금 동결로 이어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실제로 경영 환경이 어렵지 않은 금융기관도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직원들의 임금에 손 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용 절감 및 조직 축소와 관련, 대부분의 은행 직원들은 취지에 공감하고 있지만 사측이 일선 직원들의 고충을 헤아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불만도 드러내고 있다.
은행들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차원에서 영업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이 낮은 점포들은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번 자구책은 은행과 기업이 상생하기 위해 운영 비용을 줄이자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며 "점포 통폐합을 하더라도 인원 감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업점 직원들은 영업 비용이 줄어들어도 영업 활동은 기존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해 고충이 따른다고 토로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직원은 "전에 두개 쓰던 것을 하나만 써야하는 상황"이라며 "상부에서 비용 절감을 위한 여러 지침이 내려오는 등 회사 분위기가 각박해졌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본사에서 중앙 부서를 줄이고 100개 이상의 지점을 통폐합한다는 내용의 자구책을 발표했는데 인원 감축이 없겠느냐"며 "직원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은행권에 대한 지원의 대가로 자구노력을 강조하면서 은행들이 비도적적인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일각에서 은행들을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가 만연한 집단으로 보는 게 안타깝다"며 "각 은행이 발표한 자구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임원이 아니라 내 임금이 깎여도 수긍할 것"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하나은행에서 자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직원은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있다"며 "더 힘든 건 주위에서 최근 위기를 은행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은행들이 겪고 있는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다만 일선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위기 극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사회에서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이재호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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