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펀드 수익률이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면서 투자자들이 패닉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중 자금은 펀드로부터 썰물처럼 빠져나와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은행권 예금으로 꾸준히 흘러들어가고 있다.
아직 펀드에 돈을 묻어 놓은 투자자들은 추가 수익은 고사하고 그동안 까먹은 원금 때문에 쉽게 환매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진정 국면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의견과 침체 국면이 향후 1~2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적극적인 투자는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자산운용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4거래일 동안 6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가는 등 펀드 환매 랠리가 지속되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증시 폭락 및 채권 시장 불안감으로 인해 지난 4거래일 간 3108억원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펀드 잔액은 2748억원이 줄어들었다.
글로벌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데다 특히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투자한 이머징마켓 증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외 주식형펀드 시장은 붕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전체 해외 주식형펀드(777개)의 3개월 평균 수익률은 -35.39%를 기록 중이다.
해외 주식형펀드는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환매 랠리가 시작되면서 무려 3조원 가량의 자금이 유출됐다.
자산운용협회는 리먼브라더스에 대한 위기설이 돌기 시작한 지난 7월부터 이달 10일까지 해외 주식형펀드 설정 잔액이 2조9638억원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7월과 8월에는 각각 8578억원과 5126억원이 감소했으며 지난달에는 1조1310억원이 줄어들었다. 이달 들어서도 이미 4624억원이 빠져나간 상태다.
지역별로는 중국 펀드가 7862억원으로 가장 많이 줄어들었으며 브릭스와 아시아 지역 펀드가 각각 5979억원, 4987억원 감소했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일본, 친디아 펀드도 각각 1000억원 이상의 잔액 감소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와 인도 등 주요 해외 펀드의 부진을 만회할 대안으로 떠올랐던 러시아·브라질 펀드까지 최근 수익률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펀드 시장의 안전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국내 러시아 펀드(19개)의 3개월 평균 수익률은 14일 기준 -65.16%로 해외 주식형펀드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브라질 펀드(19개)도 지난 5월 말 28%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3개월 평균 수익률이 -53.40%로 추락했다.
펀드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은행권 예금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한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9일까지 국내 은행의 실세총예금은 9조8000억원 가량 늘었다. 요구불예금은 2조5000억원 감소했지만 은행 간 고금리 경쟁이 벌어지면서 저축성예금은 무려 12조3000억원 급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는 은행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고금리 상품을 출시하면서 시중 자금이 은행권으로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시장 전망에 혼선을 빚고 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국 정보가 자국 은행에 대한 예금 보증에 나서고 유동성 부족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도 강화되고 있다"며 "국내외 금융시장이 조만간 안정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신민영 LG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금융위기가 완연한 진정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불안 요인이 남아있어 보수적인 투자 행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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