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증시 폭락으로 환율이 1,350원대까지 급등하면서 세계경제 침체는 물론 국내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이 3일째 폭등하면서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은 장중 1,350원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글로벌 신용경색의 심화로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는 추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패닉(공황상태)에 빠지면서 기업들은 자금 조달줄이 막혀 아우성이다.
더욱이 통화파생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금리상승에 따른 가계대출의 부실화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등 경제 전반에 비상등이 커졌다.
특히 정유, 항공업종은 환율상승에 따라 직격탄을 받고 있는 반면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수출업종들은 환율상승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얻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가파른 환율상승이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 분석했다.
◆ 정유업계, 환율 1원 오르면 70-80억원 손실
수입이 주류를 이루는 정유업계는 환율상승으로 받는 타격이 매우 크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원유수입은 유전스(Usance:기한부어음) 형태로 거래하기 때문에 환율급등은 피해가 크지만 수입원유로 가공한 제품의 54% 정도를 수출도 하고 있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그만큼 손실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내년도 경영전략면에서도 환율 등락에 따라 적절히 대책을 세우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GS칼텍스측도 “환율이 1원 오르면 정유사 전체적으로 70~80억원 손실을 보는 구조를 갖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환차손을 최소화시켜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응이 애매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정규모의 외화부채를 유지해야겠지만 달러를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고 상황을 진단했다.
현대오일뱅크도 환율이 1원 오를 때마다 10억원 이하 손실을 보고 있다. 이에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외화자산을 100% 정책적으로 헤징하는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다.
오일뱅크 관계자는 “외화원유 가공품에 대한 수출은 30~40% 정도 차지하고 있지만 수입하는 비중이 커서 환율이 오르면 어쩔 수 없이 피해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타 정유사들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 환율이 오르면 타 정유사와 달리 헤징하는 것도 불가능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4대 정유사 중 수출비중은 60%로 가장 높기 때문에 그만큼 환율상승에 따른 이익도 누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항공업계 환율상승 ‘직격탄’ 맞아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350원대로 급등하면서 요동을 치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체들은 말 그대로 초비상 상태에 빠졌다.
항공사는 일반적으로 경영비용의 약 40%를 차지하는 유류비를 달러로 지급하기 때문에 환율급등은 곧바로 비용 상승으로 연결된다.
대한항공의 경우 연간 사용하는 달러화가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약 20억불 정도가 많다. 이에 따라 단순한 계산방식으로 달러화 대비 원화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대한한공은 연간 2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한다.
특히, 항공기 구입자금 등으로 약 53억달러의 외화부채를 안고 있는 대한항공은 국제유가 및 환율상승등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악재 때문에 내년도 사업계획마저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통 대한항공은 9월에는 차기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도록 각 부서에 지침을 내리지만, 올해의 경우 환율, 국제유가 등 안갯속의 시장여건 때문에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한항공은 지난해 세웠던 금년도 사업계획이 요동치는 국제유가 및 환율 때문에 큰 의미가 없어져 지난 2/4분기부터는 분기별로 사업 집행계획을 새로 짜 진행 중이다.
더욱이 원화 환율상승에 앞서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실적악화는 불보듯 뻔한 상태다.
이밖에도 원화환율이 상승하면 해외여행 자체가 감소하기 때문에 항공업계는 경영실적 하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외국여행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된다"며 “외국여행 수요는 이미 위축되기 시작했는데 만약 달러 대비 원화값이 이 추세라면 항공사들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올해 항공업계의 경영목표는 얼마의 영업이익 및 경상이익을 올리는냐가 아니라, 적자폭을 얼마나 최소화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정도로 업계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자동차∙조선등 수출업종, 환율상승으로 큰 수혜
이에반해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급상승을 크게 반기는 업종들도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한진중공업 같은 자동차, 조선 등의 수출업종들은 지난 2001년4월(1,358원) 이후 7년6개월만에 환율이 1,350원대를 넘어섬에 따라 경영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 3/4분기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10.4% 감소한 6조3,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보이지만, 영업이익은 6,00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무려 37% 증가할 전망이다.
고환율, 평균판매가 인상 등으로 영업수익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율이 많이 상승했지만,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여파가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 수출감소로까지 작용하고 있다”며 “이에 환율상승은 전체적으로 볼 때 수출감소에 따른 수익감소에 대한 감쇄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경영실적을 크게 개선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의 미국 수출실적은 전년동기대비 26.6% 떨어졌고, 유럽의 스페인은 지난 8월에 전년동기대비 32%, 이탈리아는 5.5% 각각 감소했다.
또한 미국 금융위기 여파가 덜한 중국, 브라질 등 아시아지역과 남미지역 같은 경우 아직까지 현대∙기아차의 수출량이 미진한 지역이어서 환율상승 효과가 크지 않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미국 금융위기 여파가 덜 미치는 지역은 아직 수출실적이 많지 않는 지역들이어서 환율상승 효과가 그리 크지 않고, 수출량이 많은 미국, 유럽지역은 워낙 시장상황이 좋지않아 수출실적 자체가 감소하고 있어 환율상승에 따른 효과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도 환율상승에 따른 수혜를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아차는 환율상승 및 신차효과에 힘 입어 올 3분기에 흑자전환이 예상될 정도다.
이와 관련 기아차 관계자는 “포르테, 쏘울 등 내수 부문에서의 신차효과는 내년에 이 차들이 본격적인 수출에 나서기 때문에 수출부문으로 이어질 전망"이라며 "환율도 급격한 하락보다 완만한 하락세가 예상되기 때문에 실적 개선 추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진중공업 등 조선업종도 환율 상승 수혜를 보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초대형 유조선(VLCC) 2척을 3.3억불에 수주하며 수빅조선소를 통한 초대형 선박시장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올 3/4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의 올 3/4분기 예상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2,155억원, 1,354억원으로 2/4분기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대 규모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률 또한 2/4분기 14.6%에서 3/4분기 15.8%로 1.2%포인트 개선될 전망이다.
박재붕기자 pjb@, 김준성 기자 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