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회사 설립 초기부터 수십년 동안 유지돼 왔던 오너 중심 경영체제를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과 함께 독립경영체제로 바꾼지 8일로 100일을 맞는다.
삼성은 지난 7월 1일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이 회장의 퇴진으로 경영위축이 우려됐으나, 그동안 전문경영인들이 계열사를 오래동안 운영해오다 보니, 외견상 큰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삼성은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를 잇는 운영체제도 독립경영 강화로 계열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장협의회'를 통해 그룹간의 정보공유도 활발히 이뤄지면서 외견상으로 '순항'하는 모습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 전자, 석유화학 등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계열사에서 경영실책이나 혼란 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전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의 해체에 따라 삼성이 잃어버린 '기회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에 앞서 이 전 회장 퇴진을 가져온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사태'가 시작된 이후 삼성은 기존 사업의 확대 외에 활발한 전략적 경영 및 투자의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퇴진과 그룹 전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이 해체됨에 따라 삼성은 기존 사업의 과감한 확대나 전략적 경영 및 투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장협의회에 그룹 경영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보니 국제금융위기 사태를 맞아서도 그룹차원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계열사간 업무협조 등 그룹 시너지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 이 전 회장 측근 외 경영쇄신 없는 '과도기' = 삼성은 독립경영을 선언한 이후 발표했던 10가지 경영쇄신안 중 100일 동안 실행한 것은 ▲이건희 전 회장 퇴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최고고객책임자(CCO) 사임 ▲전략기획실 해체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 퇴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회장 일가의 그룹 경영 중심에서 벗어난 것을 삼성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
하지만 삼성은 이 전 회장의 아들과 핵심측근을 정리한 이후 후속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 독립경영을 외쳤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경영성과를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계는 이같은 삼성의 태도에 경영권 편법 승계, 조세포탈 등에 관한 '삼성 재판'이 종결되지 않는 점 등이 적극적인 경영쇄신의 걸림돌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과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 등 삼성의 전․현직 수뇌부가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경영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8일 항소심이 열리는 '삼성 재판'이 대법원에서 종결되는 올 연말까지는 특별한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리하다.
◇ 경영계획, 인사준비... 그룹차원 움직임 '미미' = '삼성 재판‘이 걸림돌이라고 하지만 삼성은 이달 초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 연말연초 인사 준비 등 일상적인 경영 일정은 예년과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다.
연말 확정 예정인 경영계획은 그룹차원의 조정이라기 보다는 계열사별 목표를 설정하고, 사장협의회에서 이를 종합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발족한 브랜드관리위원회는 신설된 지 3개월 만인 지난달 24일에야 첫 상견례를 한 것이 전부이고, 투자조정위원회는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삼성 서초동 시대'를 열게 될 삼성전자의 '서초 타운' 이사도 다음달 중순부터 하순까지 진행될 계획이다.
연말연초 인사 또한 당초 예정대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뚜껑을 열기 전엔 절대 알수 없다'는 철통보안으로 이름이 높은 삼성 사장단 인사는 올해의 경우 그룹 전현직 수뇌부의 재판이 걸려있는 만큼 더욱 예측을 불허하고 있으나 인사를 위한 준비작업은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삼성은 실적주의 인사 원칙에 따라 실적을 토대로 인사 평가가 진행되며 10월말까지의 연간 실적이 기본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삼성 고위 간부는 “그동안 그룹 내외에서 겪은 혼란 속에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됐던 것은 사실지만 혼란 속에서도 직원들은 경영진을 믿고 나름대로 안정을 찾아왔다”며 “시장에서도 삼성 경영진들에 대한 신뢰가 깊은 만큼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앞으로 그 사회적 책임과 책무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용준 기자 sasori@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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