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모색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1970년대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경제를 이끌던 단카이(團塊, 덩어리)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함에 따라 하락세에 빠진 일본경제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1990년대 일본 부동산 버블을 대표하는 오다이바의 레인보우 브릿지. |
단카이 세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지칭하는 말. 단카이 세대는 1970~1980년대 고성장을 이룩한 일본경제의 상징이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버블 붕괴에서 비롯된 ‘잃어버린 10년’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도 한 단카이 세대는 일본경제의 영광과 시름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는 2000년대 후반 55~60세에 접어들며 퇴직 적령기를 맞았다. 일본경제의 주역이었던 이들의 퇴장은 일본경제에 여러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문제는 단카이 세대의 퇴장으로 발생할 기술적 손실이다.
일본이 경제 성장기부터 집중해 온 전기·전자·기계 분야는 아직까지도 일본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이 분야에서 일본은 빠르게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기술력의 중심에는 경제발전과 기술개발을 함께 이뤄온 단카이 세대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기술경쟁력에 있어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미치는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 도쿄만에 1990년대 들어선 대규모 산업단지. |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원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일본의 기술축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미국은 쌓아 올린 기술을 체계화된 틀을 통해 전수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개개인이 암묵적으로 기술을 쌓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구 연구원은 단카이 세대의 은퇴에 대해 “축적된 기술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이는 일본의 기술자 집단인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기술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로 향후 3~4년 내에 이뤄질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40여년간 쌓아온 기술력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에도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 부문에서의 높은 기술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전선에서의 단카이 세대 이탈은 큰 타격이다.
구 연구원은 “하지만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일본의 기술경쟁력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기술력 손실은 피할 수 없어 일본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NTT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동경의 중심가 신주쿠. |
일본 기업들이 단카이 세대에게 지불해야 하는 퇴직금은 약 50조엔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2008년도 일본 국가 예산 85조엔의 60%에 육박하는 규모로, 최근 경기악화로 유동성 곤란에 빠진 일본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일본경제가 막대한 유동성 이탈로 저투자-저성장-저소비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의 쳇바퀴를 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정성춘 대외경제연구원 일본연구팀장은 “단카이 세대는 일본 인구분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단카이 세대가 받게 될 퇴직금의 규모가 엄청나 하향 국면에 있는 일본 경기의 하강세를 가속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정부의 재정부담도 증가할 전망이다.
단카이 세대의 대거 퇴직은 세수(稅收) 감소를 의미한다. 직장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며 소득세를 납부하던 이들의 퇴직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불가피하다.
또 안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진 단카이 세대가 이전과 같은 소비를 할 것으로는 예상키 힘들기 때문에 소비세 감소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수 감소는 적자행정을 이어온 일본 행정부에는 적잖은 부담을 끼칠 전망이다.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정부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노년기에 접어든 단카이 세대에 국민연금, 간병보험 등의 복지혜택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 복지제도 수혜자 증가로 늘어난 부담은 일본 정부가 떠안아야 할 문제다.
일본 내부에서는 단카이 세대의 은퇴로 생길 문제에 대해 퇴직자 재고용, 정년연장 등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단카이 세대를 이대로 산업 전선에서 이탈시키기 보다는 재취업을 통해 적정 경제활동인구를 유지하고 직간접적 손실을 막자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편 단카이 세대의 은퇴는 한국 경제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할 예상이다.
정성춘 연구원은 “단카이 세대 은퇴로 인해 일본경기가 하락하면 대일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면서 “한국은 일본에 주로 중간재를 수출하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의 감산과 설비투자 위축은 타격이 될 것”이라고 단카이 세대의 퇴장이 한국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설명했다.
하지만 단카이 세대의 퇴장이 한국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정 연구원은 “경기하강 국면이 끝나는 시기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단카이 세대의 특정 소비층을 상대로 효과적인 전략을 세운다면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관광업계에서는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높은 단카이 세대의 수요를 공략하면 관광, 리조트 분야에서 특수를 누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 연구원은 “개별 산업에서 어떤 마케팅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미시적으로 이익을 보는 분야가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단카이 세대를 통한 한국 산업 기술경쟁력 제고도 가능할 거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숙련된 기술력을 보유한 단카이 세대 인력을 한국이 흡수한다면 승수효과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전망이다.
단카이 세대 영입으로 기술력 확보에 성공한다면 대일본 주요 수입품인 전자·기계·건설장비류의 비중을 낮출 수 있어 대일본 만성적자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기술력 신장으로 글로벌 기술경쟁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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