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의 거물들이 지역구에 총출동해 `혈전'을 벌인 탓에 전국을 무대로 선풍적 인기를 구가한 `영웅'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권역별로 고공전을 벌인 `맹장'들의 숨은 노력이 빛을 발했다.
각 당은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면서 이들의 공로 속에 일희일비를 거듭해왔으며, 이들은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향후 논공행상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 과반의석 확보를 위해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하고 백의종군한 강재섭 대표는 이번 선거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1등 공신'이다.
강 대표는 `대학살'로 불리는 공천 물갈이로 전국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설 중량급 인사가 없고 박근혜 전 대표마저 공천에 반발, `지원유세 보이콧'에 들어간 어려운 상황에서 당 대표로서 고군분투한 것.
지난달 27일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충청권을 시작으로 대구.경북, 부산.경남을 돌아 호남, 강원, 수도권까지 전국을 누비며 `국정안정을 위한 변화'를 주창하고 나선 부흥사 역할을 맡았다.
유세기간 회갑을 맞기도 했던 강 대표는 지난 경선 관리와 대선 승리에 이어 총선 승리마저 이끌어낼 경우 당 대표로서 `선거 3관왕'을 기록하는 셈.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당을 위해 자신을 버린 박희태, 김덕룡 공동선대위원장과 맹형규 수도권 선대위원장 등 `불출마 3인방'의 활약도 적지 않았다.
특히 `친박 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영남권과 수도권에서 `소방수'로 긴급 투입돼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다.
정치생명을 걸고 서울 동작을에 `맞불' 카드로 투입된 정몽준 의원도 초박빙의 수도권 지역 후보들의 지원 요청에 일일이 응하면서 후보 지지도 향상에 기여했다.
서울 중구에 출마한 나경원 전 대변인은 전국적 인지도 탓에 곳곳에서 지원유세를 요청하는 `SOS'가 빗발쳤고 자신의 지역구는 물론 유세지원까지 나서 `원더우먼'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이밖에 조윤선 대변인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야권의 정치공세에도 불구하고 동요없이 침착하고 당당하게 대처했으며, 강 대표의 지방일정을 수행하는 등 1인2역을 무난히 소화했다.
◇민주당 = 지난해 연말 대선 참패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최악의 조건에서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그나마 80∼90석의 꿈을 갖게 했던 데는 당 지도부의 헌신이 눈부셨다.
손학규 대표와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정치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각각 서울 종로와 동작을에 출마해 서울 남부와 북부를 잇는 `남북벨트'의 지지율을 견인하면서 당내 분위기를 고무시켰다.
당 대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나서자 강금실 선대위원장도 `쉬운 길'인 비례대표를 버리고 전국 유세에 매진했다.
이는 당내 간판스타가 나서 10%대에 머물러 있던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와 함께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의 지역구 출마로 지도부의 전국 지원유세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론에 근거한 판단이기도 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낙천자들로 꾸려진 `화려한 부활' 유세단도 한몫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김민석 최고위원과 유종필 대변인 등이 주도했던 `부활' 멤버들은 낙천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중앙당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격전지를 골라 전략적으로 지원사격을 펴는 `별동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자신들과 민주당의 부활을 꿈꿨다.
선거 초반 국민에게서 외면받아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린 인물은 박재승 전 공천심사위원장이다. `공천특검' `저승사자'로도 불렸던 그는 한 달간 지속된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금고이상 형을 받았던 후보들을 단칼에 내리치면서 유권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기타 = 자유선진당은 전국적 지명도를 바탕으로 선거전을 진두지휘하며 득표율 제고에 나선 이회창 총재가 최대 공신으로 꼽힌다.
충남지사를 3차례 역임한 심대평 대표 역시 `충청권 표심' 공략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6선의 조순형 선대위원장은 수도권 유세를 책임지며 선진당의 지역적 외연 확대를 꾀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한나라당을 향한 `복수혈전'를 도모한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전 대표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특히 `친박 무소속 연대'를 진두지휘한 김 의원은 영남권 무소속 돌풍을 일으키면서 `의병 대장'으로 우뚝 섰고, `친박 연대'에서는 서 전 대표의 관록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민주노동당의 숨은 공신으로는 중앙선대위 이병길 정책기획팀장과 공계진 상황실장, 강형구 부대변인이 꼽힌다.
이병길 정책기획팀장은 총선 전략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면서 기획을 쏟아냈고 공계진 상황실장은 선대위 살림을 책임졌다. 강형구 부대변인은 TV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분당사태 이후 붕괴된 당 대변인실을 수습하며 언론을 총괄하는 등 민노당 `입'으로 맹활약했다.
진보신당은 중앙선대위 김용신 기획위원장과 정종권 부집행위원장이 지난달 16일 창당한 뒤 곧바로 총선에 뛰어들 수 있도록 당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인 숨은 공신이다.
특히 이지안 부대변인은 언론관계를 총괄하면서 진중권 중앙대교수와 박찬욱 감독 등 학계와 영화계 진보적 인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1인 다역을 소화했다. 피우진 비례후보는 전국을 돌며 당 인지도와 지지도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창조한국당은 김동규 대변인이 은평을에 출마한 문국현 대표의 선거운동을 총괄했고 김지혜 부대변인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선거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