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스페셜 칼럼]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를 바꿀까

2025-01-09 18:33
계엄이 던진 2개의 딜레마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대를 잘못 찾은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뒤이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우리의 정치와 시민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안겨줬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것인지, 내란과 관련된 대통령의 법적 책임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우리 앞의 정치일정이 어떻게 짜여질지,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지워진 과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왜 우리의 정치공동체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고, 미래에 이런 불행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영속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의 무엇을 고치고 바꿔야 하는가. 우리 정치공동체가 앓고 있는 불행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손쉬운 답변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이 지면에서도 사실 우리가 처한 딜레마들에 대한 거친 스케치를 시도해 볼 따름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하고 단선적인 '처방'은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으며,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 앞에 놓여진 딜레마를 잘 정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들을 '제도'와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치의 문제가 정치제도, 혹은 정치구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우리의 정치문화가 문제라는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첫째, 우리 헌법과 정치구조에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적극적인 제도 개혁, 특히 개헌과 선거제 개혁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이번 계엄사태의 핵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적 정치문화를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첫 번째 딜레마: 정치구조의 문제

이미 차제에 개헌과 정치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들린다. 권력구조, 선거제도, 대통령 임기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터져나올 것이지만, 급박한 정치일정이 진행된다고 했을 때, 당장 개헌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문제들을 제도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도개혁론자들의 입론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아마 다음의 몇 갈래 정도로 요약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가 있고, 이러한 대통령의 자의적이고 압도적인 권력행사를 제도적으로 막자는 주장이다. 둘째, 단임제 대통령의 문제가 있는데, 재임을 생각하지 않는 대통령은 우리가 윤 대통령에게서 본 것처럼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셋째, 선거제도의 문제가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공히 단순다수제, 즉 승자독식을 택하고 있어 이것이 양당의 극단적 대립을 부추긴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위에 간단하게 현재 제도에 대한 비판 논지를 적어놓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들이 아래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첫째, 내각제를 택한다고 우리 정치문화에서 '제왕적 수상'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오히려 의회다수당을 등에 업은 더 강력한 제왕이 생기지 않는가? 둘째, 현재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4년 중임제 대통령제는 어떤가? 중임제의 2기에서는 다시 '전광판을 보지 않는 대통령'이 되지 않나? 이것은 결국 8년 단임제가 되지 않나? 그렇다면 더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지 않나? 셋째, 선거제도를 승자독식이 아닌 대통령 결선투표제나 국회의원 비례대표 강화, 혹은 중대선거구 등으로 바꾸는 안들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이상과 같은 제도들은 승자독식의 양당제를 극복하고 다당제적 방향성을 지니게 될 것이며, 이는 군소정당들이 시스템에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수적으로 극단적 정당들, 예컨대 부정선거를 믿는 정당이나 극좌정당 등의 원내진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정치는 이런 변화를 감내할 정도로 강건한가?

이 지면에서 이 논쟁을 더 자세히 이어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제도개혁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같이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울러 개헌이나 선거제 개혁의 시기는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진행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예컨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에도 불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시점에서 만약 탄핵이 인용된다 해도 당장 대선이 치러지기 전 개헌은 불가능할 것이며, '공약으로서의 개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극단적으로 문제적' 대통령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 우리 정치가 잘못됐다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보다 나은 대통령, 보다 나은 정치를 우리가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예컨대, 그 이유가 우리 정치문화에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정치제도를 바꾸어도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우리는 제도개혁의 딜레마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딜레마: 음모론 이후의 세계

이번 계엄사태로 인해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사실 음모론과 가짜뉴스의 문제이다. 돌이켜보면, 작년 9월 김민석 의원이 계엄령의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믿기 어려웠고, 대다수의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민주당의 음모론이라 치부했다. 우리의 문제는 계엄설이 계엄령으로 ‘실현’되었다는 데 있다. 이제는 믿지 못할 것이 없어진 셈이며, 못할 말이 없는(Anything goes) 세계가 열린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주요 동기 중 하나가 부정선거에 대한 의심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이번 계엄사태를 통해서 아마 가장 세를 불린 사람들이 있다면 부정선거론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음모론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나름의 논리로 설명해주는 대안적 내러티브이다. 계엄설이 계엄령으로 현실화되고, 그 이유 또한 대통령이 부정선거론을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부정선거론을 믿지 않던 대통령 지지자들도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정선거론을 받아들이기 십상일 것이다.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는 사실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윤 정부는 당선 이래 끊임없이 선관위의 신뢰성을 공격했고, 급기야 작년 국정원으로 하여금 선관위 서버를 '점검'하게 하는 등 선거신뢰를 훼손하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결국 이것으로 인해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자신의 지지자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함으로써 선거 신뢰성 회복의 길은 멀고 험해졌다고 생각된다.

'Anything goes'의 세계가 열린 후,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는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국회에서 직접 증언을 한 김어준의 케이스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것은 계엄 이전의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던 일이며,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사실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명백한 증거나 팩트 체크 없는 '제보'들이 경쟁적으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위험하게 증폭된다는 점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음모론의 작용과 반작용이 난무하는 세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는, 이런 음모론과 가짜뉴스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굳이 표현의 자유를 들지 않더라도, 규제와 단속이 불가능한 이 미디어 환경에서 규제와 단속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오히려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놔둘 수도, 그렇다고 규제할 수도 없으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전 세계 어느 사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앓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계엄령을 발동하게 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의원, 정당, 공공기관을 통해서 나가는 정보는 그 소스의 확인과 팩트체크 과정 등 공표의 조건들을 미리 정할 것. 유튜브의 큰소리들과 카카오톡의 '받글(받은 글)'들은 사실 재미와 관심과 전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팩트가 무엇인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훌륭한 가짜뉴스란 99%의 팩트와 1%의 악의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 공동체를 좀먹다가 나라를 파탄(예컨대 계엄령 선포)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사실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가정에서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결론이 너무나 싱겁고 힘들고 가장 오래 걸리는 해결책이라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시작했으면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특히 우리 기성세대는 아무도 뉴미디어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대통령도, 그의 열성스런 지지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라는 이중의 임무를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취해 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런 대한민국의 성취가 사실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한달 동안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정상궤도를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50년 전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헌정질서를 새롭게 구상하고, 정치공론의 장에서 음모론이 설 땅을 줄여나가는 일은 위에서 본 것처럼 간단한 일도, 단기적으로 해결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가 중대한 만큼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파면하고, 어떻게 수사할 것이며, 다음 선거에서 누가 집권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기에 비하면 어쩌면 사소한 문제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항로를 결정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아까운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기획처장 ▷중앙선관위 여심위원 ▷전 한국정당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