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한남동으로 달려간 44명의 의원들
2025-01-07 14:02
지난 6일 국민의힘 소속 의원 44명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았다. 1월 6일은 공수처에 의한 체포영장 집행이 가능한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이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공수처의 영장 집행을 막으려고 한남동 대통령 공관 앞에 집결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당대표를 지낸 김기현 의원도 "이번 체포영장 집행은 불법이며 저와 국민의힘 의원들은 영장 집행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추측이 크게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먼저 이들에게 묻고 싶은 점은, 한남동 관저로 ‘출동’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계엄에 찬성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 하는 점이다. 만일 이들이 계엄은 잘못된 행위였지만, 공수처에 의한 체포영장 집행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대통령실 측은 해당 영장에 대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이의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즉, 영장은 적법하다고 결론내린 것인데, 그렇다면, 체포영장 집행이 불법이라는 주장은 누구의 판단에 의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가뜩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에 국가의 질서가 어지럽혀지고 있는데, 여당 의원들마저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린다면, 이는 여당이 해야 할 역할은 아니다. 지금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대통령에서 비롯된 국가적 차원의 무질서를, 법치를 통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문자 그대로 국가 기관이 각자가 ‘옳다고 판단’하면, 국가의 지휘 계통, 명령 계통도 무시해 버리는 각자도생이 판치는 상황이다. 지난번 체포영장 집행 시도 당일, 경호처의 요청을 받은 최상목 권한대행은, 대통령 관저 경비를 맡고 있는 경찰과 군에게 경호처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찰과 군 당국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군과 경찰의 판단은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명령 계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적법’하다고 판결한 체포영장을 두고, 여당마저 ‘집행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나라는 각자의 판단이 법치에 우선하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계엄 선포는 잘못이지만, 영장 집행도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만일, 한남동 관저에 모인 의원들이 계엄 선포의 불가피성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만일 이들이 계엄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면, 윤 대통령의 주장처럼, ‘종북 세력’ 혹은 ‘반국가 세력’이 준동하고 있고, 부정 선거도 있었다고 믿을 텐데, 그렇다면, 그런 ‘믿음’의 근거를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모두 접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근거를 들을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지만, 묻지도 않고, 물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 그때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계엄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잘못된 행위’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할 점은, 정치인이 가지는 사회적·정치적 역할이다. 정치는 자신들의 생각을 계몽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민심을 계몽하려 들지 말고, 오히려 민심을 좇아야 한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국민의힘 의원들 상당수가 생각하는 민심은 과연 무엇인지가 그것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통해 저지른 국가적 해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계엄 선포로 인해 국가 신인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계엄 이후 곤두박질치고 있는 주가와, 계엄 이후 급속히 상승한 환율은, 계엄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으로 모든 것이 회복돼 보호이익이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또한, 대통령 측은 국민들의 놀란 가슴이 회복됐는지는 어떻게 알며,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제도’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민심이 이런데도 대통령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고, 그런 대통령을 위해 의원들은 한남동 관저로 갔다. 한남동에 간 의원들은 자신의 모습이 일반 국민들에게 어떻게 투영되는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민심보다 자신의 지역구 민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런 길을 선택하는 의원들이 많을수록 국민의힘이 ‘지역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커진다. 즉, 민심을 계몽시킬 수 없다면, 그리고 민심이 자신들의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받아들인다면, 국민의힘은 지역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현재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올해에 차기 대선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입장을 취하든 지금의 열악한 위치가 나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여유를 갖고 여론을 살펴 합리적인 결론을 내라는 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