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청설' 홍경 "첫사랑 하는 소년, 시네마틱한 순간에 대해"

2024-11-28 18:57

영화 '청설' 배우 홍경 [사진=매니지먼트 mmm]
배우 홍경(28)은 관객의 마음을 허문다. 러닝타임 동안 조금씩 반복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두드리고 어느새 허물어진 마음 너머에 자리 잡는다. 어떤 작품이든 홍경은 그 '인물'로서 관객을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영화 '청설'(감독 조선호)은 이같은 홍경의 장기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동안 짧은 분량 안에서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관객을 설득해 왔다면 이번 작품은 오랜 시간 공들여 관객을 동화 시킨다.

"저는 연기할 때 최대한 그(캐릭터)를 알아보려고 해요. 사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냥 그 과정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인물을 이해하고 현실에 발붙이게 만들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요. 그 시간 속에서 실제 저의 모난 면을 보고 마주하게 되는데 그 작업을 통해 (캐릭터의) 속까지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 '청설'은 손으로 말하는 '여름'(노윤서 분)과 '가을'(김민주 분) 그리고 '용준'의 사랑과 순간들을 담았다. 극 중 홍경은 대학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든 '용준'을 연기했다.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 혼란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만난 '여름'에게 속절없이 빠져드는 인물이다. 홍경은 '용준'을 통해 '용기'를 보았다며 숨기거나 보태는 법 없이 '여름'에게 다가가는 그에게 감탄했다고 말했다.

"'용준'이 사랑을 표현하고 '여름'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보며 놀랐어요.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고 용기 있을까?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데 두려움이 없고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어요." 
영화 '청설' 배우 홍경 [사진=매니지먼트 mmm]

또래가 주는 힘은 크다. 그 나이에만 겪는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어서다. 홍경이 '용준'을 들여다보고 그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감독님께서 저를 선택하실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요. 20대 배우들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셨고 저 역시도 우리(20대인 배우들)만이 담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준'의 모습을 보며 공감할 수 있는 게 많았는데요. 이 친구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혼란을 겪고 있어요. 극 중 크게 조명되지 않지만, 이력서 작성 등을 통해 이런 고민과 갈등을 표현하거든요. 마냥 놀고 게으름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혼란을 겪고 있는 점이 크게 공감됐어요. 스스로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실제 저도 느끼고 있는 지점과 닿아있었죠."

극 중 '용준'과 완벽하게 일체하는 순간에 관해서도 말했다. 영화는 '용준'의 첫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홍경이 인물과 호흡이 맞아떨어진 순간은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었다고.

"'용준'이 엄마(정혜영 분)에게 '여름'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찍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름답게 아팠어요. 당시 혜영 선배님과 나눈 에너지가 (영화로는) 단면적으로 나왔지만 (찍을 때는) 호흡이 길었거든요. '용준'이 처음으로 겪는 아픔을 엄마에게 위로받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혜영 선배님이 저를 보는 눈빛이 아직도 정말 생생해요. 말 없는 위로도 아름다웠고요. 그 신이 참 좋았어요."

상대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용준'의 마음을 흔든 첫사랑 '여름' 역을 맡은 노윤서, '여름'의 동생 '가을' 역의 김민주를 언급하며 "많은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윤서 씨는 슈퍼 커리어를 쌓고 계시잖아요. 그의 일면 밖에 보지 못했지만, 제가 본 윤서 씨는 정말 총명하고 영민한 배우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지 망설일 수 있지만, 명료하게 다가오고 연기 외에도 현장에서 배우가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내요. 리더쉽이 출중하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민주 씨는 정말 깊은 배우예요. 극 중 잔잔한 물결이 일며 파동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민주 씨가 해주었어요.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일어나는 레이어가 주요소잖아요. 두 자매가 만드는 감정의 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졸이게 되고 마음 아프게 느껴지더라고요. 연기 하며 집중력이 굉장한 배우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청설' 배우 홍경 [사진=매니지먼트 mmm]

'영화 마니아'로 평소에도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 왔던 홍경은 자신이 느끼는 '영화'의 매력, 시네마틱한 순간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영화가 줄 수 있는 힘이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해요.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해 주기도 하고, 타격감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수도 있죠. 그중에서도 제게 시네마틱하게 다가오는 건 찰나의 순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현미경으로 펼쳐 보이는 거예요. 저는 우리 영화가 참 시네마틱하다고 느끼거든요?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 찰나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 그런 순간을 통해 영화를 시네마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거예요."

홍경이 생각하는 영화 '청설'의 매력, 시네마틱한 순간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요즘 도파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시각적으로 나의 자극을 극대화하는 것들. 시선 집중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사로잡힐 수 있는 것들. 팍팍 튀기고 강렬한 이야기도 시네마틱할 수 있지만, 우리 영화만이 가지는 시네마틱함도 분명히 있거든요.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들. 집중도가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나의 첫사랑을 떠올리게끔 만들고, 사랑을 하면 일어나는 감정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죠. 그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어서 쌀쌀한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맘때면 사랑이 고파지는 시기니까요. 첫사랑 하는 소년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영화 '청설' 배우 홍경 [사진=매니지먼트 mmm]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홍경은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넌지시 던지기도 했다.

"금기를 넘나드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하하. 어떤 허들을 넘어선 지독한 금기 같은 ··. 감정적으로 누구에게나 '금기'가 있을 텐데. 그게 영화가 주는 체험인 거잖아요? 다른 영역으로 가보는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