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김성철 "'지옥2', 시험대 오르는 기분이었죠"
2024-11-12 15:14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글로벌 인기 시리즈 '지옥'에 합류하는 것도 부담인데 주요 캐릭터를 대신해야 한다니.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배우 김성철(32)은 해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감당하는 것도 제 몫이었다. 그는 담담히 '지옥'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정진수'가 되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감독 연상호)는 계속되는 지옥행 고지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세상, 갑작스레 부활한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과 박정자(김신록 분)를 둘러싸고 소도의 민혜진 변호사(김현주 분)와 새진리회, 화살촉 세력이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시즌1 공개 후 3년 만에 시즌2가 오픈됐다.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 들었어요.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공개 처형을 당하는 느낌이랄까요? 어쩔 수 없지.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니까. 담대하게 뛰어들었죠."
"솔직히 (유)아인 형 연기를 보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예요. '미친 거 아니야?' 저는 아인 형이 만든 '정진수' 캐릭터를 참 좋아해요. 대단했으니까요.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전 그 색을 낼 수 없어요. 그러니 저만의 색으로 (정진수를) 만들어야 했죠."
해외 시리즈에서 배우 교체는 흔한 일이지만 국내에서는 아니었다. 바통을 이어받는 처지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역할을 이어받는다는 걱정? 여전히 있죠. 없을 수 없죠. (시청자들이) '괜찮게 봐줄까?' 싶기도 하고요. 아까 말한 대로 (유아인이) 캐릭터 구축을 잘 해냈으니까. 그걸 내 식대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성철은 자신만의 '정진수'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거슬러 갔다. '정진수'의 근간이 되는 웹툰을 들여다보며 캐릭터의 바탕을 다지려고 했다.
"원작 웹툰을 잘 들여다봤어요. '정진수'가 하는 말이나 표정, 행동 같은 걸 따오려고 노력했어요. 최대한 제 식대로요. 저는 정진수가 새진리회를 만든 이유에 초점을 뒀어요. 그는 왜 1대 의장이 되었을까요? 뭘 위해서? 그가 1대 의장이 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진리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느낀 공포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요. 그런 점을 파고들고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서 (유아인과는 다른) 저만의 '정진수'가 만들어지게 된 것 같아요."
김성철이 연기한 '정진수'는 보는 이들을 '납득' 시켰다. 전작이 떠오르지 않는 연기와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한 스태프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촬영 초반에는 김성철이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가려는지 의문을 품었었다'고요. 그런데 촬영 막바지에 이르러 '아, 김성철이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이해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 말이 인상 깊었어요. 의도한 바이고요. 정진수라는 캐릭터의 빌드업을 쌓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담담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작품 안팎으로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쏟아지고 있으나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담대히 뛰어들었다"는 김성철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지옥2' 공개 날부터 휴대폰을 끄고 지내려고 했어요. 어떤 반응도 제게 악영향일 것 같더라고요. 다른 작품들도 (공개 후) 반응을 살피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번 작품은 더더욱 그랬어요. 호평이든 악평이든 아예 멀리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이 '지옥'에 관련된 모든 기사를 단톡방에 올려줘요. 강제적으로 보고 있죠. (그런 반응을 보며) '드라마가 좋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하하."
강제로 읽긴 했지만, 인상 깊은 반응도 많았다. 김성철은 "'형보다 나은 아우'라는 반응은 기분 좋았다"고 웃었다.
"사실 시즌제가 위험 부담을 가지고 있잖아요. 전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얻기 힘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옥'은 '형보다 낫다' '시즌2도 흥미롭다'고 하니까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기분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작품 평이나 연기 평은 잘 안 본다"며 앞으로도 챙겨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평가'가 제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잖아요. 그 당시에는 그 연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밀고 나갔는데 평가가 나쁘면 어떡해요? 100개의 칭찬이 있어도 1개의 악평이 있으면 아무래도 악평에 정신이 쏠리기 마련이니까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될 것 같아요. 제게 좋은 피드백이 있다면 수용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리뷰는 읽지 않는 편이에요."
연상호 감독은 모든 부담을 이겨내고 담대히 '정진수' 역할을 받아들이는 김성철을 두고 "무대에서 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연극, 뮤지컬은 '멀티캐스트'(여러 배우가 한 역할을 맡는 시스템) 제도가 있으니 배우 교체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멀티캐스트도 사실 부담 되죠. 어떻게 부담이 안 되겠어요. 이번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20주년 무대에 서는데요. 언제나 두렵고 떨리죠. 비교당하기도 하고 어떤 잣대를 들이댈 때도 있으니까요. 수많은 '지킬앤하이드'가 있었는데. 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떨쳐내는 방법은 없어요. 그저 후회 없이 연기하고 제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 수밖에는."
김성철은 '지옥'에 다녀온 정진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체중 감량에 나섰다. "최대한 피폐해 보이는 게" 목표였다.
"정진수가 부활했을 때 고통스러워 보였으면 하고 바랐어요. '고생했다'보다 '피폐해 보인다'가 중점이었어요. 그래서 건강한 방법이 아닌 체중 감량에만 집중했죠. '말린다'고 하죠? 수분도 느껴지지 않게 말리려고 했어요. 8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다가 온 거잖아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고통이 심하면 몸이 망가지는데 그걸 시각적으로도 느껴졌으면 하고 바랐어요. 촬영 당시는 지금보다 10kg가량 더 적게 나갔었어요. 근력 운동을 최소화하고 유산소를 반복적으로 했어요. 식단도 중요했고요."
김성철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지옥2'로 얻은 건 "도전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언제나 저의 기대와 대중의 반응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현실 감각이 좋은 편이거든요. 다만 이 작품으로 제가 얻게 된 건 '도전'에 대한 것이었어요. 물론 이걸 시청자분들이 알아줘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는 거죠."
팬들은 "왜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한 역할만 하느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전하곤 한다. 실제로 김성철은 뮤지컬,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벼랑 끝에 몰리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 왔다.
"주변에서 '왜 이렇게 힘든 역할만 맡느냐'고 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재밌어요. 하하. 해소가 되나 봐요. 무대에 섰을 때 정신이 극한으로 몰리면 '와 진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게 집중해서 쏟아내고 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푹 쉴 수 있어요.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하하. 그게 어떤 희열을 줘요. 집에서는 '꿀잠'을 잘 수 있고요."
어느새 데뷔 10년 차가 됐다. 2014년 뮤지컬 '사춘기로 데뷔해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다져온 김성철은 자신의 궤적을 돌아보며 미래에 대한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단편영화를 많이 찍었었어요. 그럼 꼭 주인공 역할을 안 주는 거예요. 보통 주인공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역할을 맡게 되더라고요. '나도 주인공 할 수 있는데. 왜 (주인공 역할을) 안 주지?'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었어요. 난 앞으로도 그런 역할들만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됐죠. 뮤지컬로 데뷔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어요. 현실과 타협하기까지가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타협하고 나니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기는 거예요. 좋은 역할들도 많이 들어오고요. '내게 너무 과분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앞으로는 기회가 더 많아지겠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