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통의 가족' 장동건 "외모? 더 이상 무기도, 족쇄도 아냐"
2024-10-22 11:06
예상 밖이었다. '조각 미남'으로 불리던 배우 장동건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아버지, 생활감이 묻은 얼굴을 보여줄 거라는 것을.
배우 장동건은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로 6년 만에 스크린 복귀했다.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본 뒤 무너지는 모습을 담아냈다.
극 중 장동건은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아과 의사 '재규' 역을 맡았다. 정의로운 인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아들의 범죄 현장을 맞닥뜨린 뒤 크게 흔들리게 되는 인물이다.
조직 폭력배(영화 '친구')부터 해적(영화 '태풍'), 냉혈한 킬러(영화 '우는 남자'), 좀비가 창궐한 도시를 장악하려는 절대 악(영화 '창궐') 등에 이르기까지. 장동건은 '캐릭터'가 강조된 인물들을 연기해 왔다. '재규'를 통해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그는 "어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력적이었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재규' 캐릭터를 소개할 때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다정하고 따뜻한 의사'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대본은 그걸 넘어서야 하니까. '할 수 있는 게 많겠구나' 싶더라고요. 재미있지만 힘든 작업이겠구나 생각했어요. 또 허진호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 텍스트라면 분명 좋은 영화를 만드시겠구나' 싶었어요."
장동건은 '재규'의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대본에서 감정 흐름이 명확하게 표현되고 배치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재규'가 도덕적이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형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거죠. 거리낌 없이 '형은 돈 벌려고 (일)하지, 나는 사람 살리려고 (일) 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이미 아들의 죄를 덮어주기로 했으면서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한 거죠. 그의 딜레마와 마지막 엔딩이 개연성 없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중간중간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극 중에는 총 4번의 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원작 소설 제목이 '더 디너'이듯, 식사 장면은 인물들에게 매우 중요한 신이었다. 인물들의 상황, 관계성, 휘몰아치는 감정 전개를 한 신으로 읽을 수 있는 핵심이기도 했다.
인물들의 심리를 치열하게 그리는 만큼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했던 장면. 장동건은 상대 배우들의 열연으로 자신 또한 캐릭터에 깊숙이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식사 장면의 경우는 제 쪽에서 한 번, 상대 쪽에서 한 번씩 찍잖아요. 그럴 때면 연기하기 좋게 대사도 맞춰주고 리액션을 해주곤 해요. 하지만 카메라에 찍히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하거든요. 매너 정도의 수준만 지키는 분위기인데 그걸 김희애 선배님께서 깨신 거예요. 눈물까지 흘리며 열연하시니 우리도 더욱 힘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아, 이게 실제여야 하는구나!' 정신이 깨는 거예요. 상대에게 에너지를 받는 일이니까. 이쪽에서 이런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제가 그보다 약하게 표현할 수는 없죠. (연기에 있어서) 착오가 없도록 함께 감정선을 맞추면서 연기했어요."
형 '재완'을 연기한 설경구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저는 처음 대본을 보고 '이 형제는 더 치열하겠구나'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형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콤플렉스를 가졌을 거라고 (재규를) 해석했었어요. 그런데 (설)경구 형이 느물느물 다가오고 툭툭 대사를 던지면서 해석이 바뀌었죠. 더 형제 같아졌더라고요. '대단한 배우구나' 생각했어요. 저의 경우는 제 해석을 두고 감독님과 상의하며 조율하는 스타일인데. 형은 말보다 직접 연기로 보여주면서 좋은 느낌을 만들어가더라고요. 설경구라는 배우의 장점이구나 생각했어요."
장동건은 영화 '위험한 관계'에 이어 다시 한번 허진호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는 "예전보다 디렉팅이 빨라졌더라"며 과거와 달라진 점을 언급했다.
"달라진 점은 시스템 등 시대의 변화에 맞춰나가고 계신다는 점이었고요. 대부분 예전 그대로였어요. 특히 작품 안에서 '여전히 감독님답구나' 많이 느꼈습니다. 하하. '보통의 가족'이 허진호 감독님답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서정성이라고 할까요? 본질을 솔직하게 건드리는 면들이 그대로라고 생각해서 감독님의 미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보고 있어요."
영화가 가족과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만큼, 자연스레 대화의 흐름 역시 아이들로 향했다. 실제 배우자 고소영과 슬하에 아들, 딸을 두고 있는 그는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작품 선택의 방향성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에게 마음이 많이 가요. 요즘은 특히 다 함께 좋아졌으면 싶은데 이 아이들이 '좋다'고 느끼려면 어떤 시간을 공유하고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에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재개봉해서 아들과 함께 극장을 갔는데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진짜 감동 받아하더라고요. 아빠를 보는 눈빛도 달라진 것 같고요. 하하.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사인받으러 오면 갑자기 (아이들이) 아는 척하기도 해요."
그는 "작품을 고를 때도 아이들이 의식된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그에게 큰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작품 선택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기로에 섰던 적은 없지만 어느 정도 의식은 가지고 있죠. 아이들이 언젠가는 이 작품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요."
그는 배우로서 '외모'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며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50살이 넘었어요. 하하. 예전에는 외모가 큰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족쇄라고도 생각했었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뭐든 잘 활용하면 좋은 거죠. 예전보다 (외모를) 감추기도 쉬워졌고요. 외모로 인해 제한받았던 것들에서도 자유로워졌어요. 배우로서, 더욱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