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본성에 관한 이야기…첫 시도 좋았다"
2024-11-04 14:21
영화 '보통의 가족'도 그러하다. 서스펜스 드라마라는 장르 외피로 "허진호 감독답지 않은 작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동안 허 감독이 보여주었던 인간 군상, 인물들의 속내가 섬세히 묻어난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 속내들이.
"저도 처음 이런 이야기를 해 본 건데요. 나름 재밌었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정서적인 이야기를 해왔는데요. 이 작품은 본성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본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게 장르적인 모양새를 가져갈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헤르만 코흐 작가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김원국 대표(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제안으로 대본을 읽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재미있는데 왜 이걸 내게 줬을까?' 싶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이야기나 스타일이 아니어서요. 그러다가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들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사람의 양면적인 모습들을 다뤄보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예전에는 사회 문제에 대해 일부러 배제한 적도 있었는데 (요즘) 사회가 급변하는 걸 지켜보며 어떤 문제들을 짚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허 감독은 '부모님으로서의 선택'이 영화의 시작점이라고 밝혔다.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에게 던져진 고민이 자생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갔다는 설명이었다.
"재규(장동건 분), 연경(김희애 분) 부부는 재완(설경구 분), 수진(수현 분) 부부보다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선(善)'을 위해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런 이들이 자기 자식의 범죄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어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질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화된 작품을 보니 각각 자기 나라에 맞게끔 바꾸었더라고요. 대본 작업을 하며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와 이탈리아가 상황이나 정서적으로 닮은 데가 많아서 그 작품을 참고했죠. 원작 자체도 그러해서 우리나라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도 적절히 맞아떨어졌어요."
극 중 가족들의 저녁 식사는 총 4번으로 이뤄진다. 원작 소설의 제목이 '더 디너'인 것처럼, 영화 속 식사 장면은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갈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신이다.
"본격적인 사건이 드러나기 전에 인물 설정이나 설명이 필요했는데 그 점들을 유머러스하게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식사 자리에 유머 코드들을 심어두었어요. 두 번째 식사는 아이들의 범죄 사실을 인지한 뒤고 각자의 신념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너무 진지하기보다는 소동극 같은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블랙 코미디 느낌이 났으면 하고 바랐어요. 세 번째 식사는 자신들의 본모습이 나오고 감정적으로 부딪치죠. 긴장감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 에너지가 마지막 식사까지 이어졌으면 생각했고요."
영화 '보통의 가족'은 부조리극 같은 인상을 준다. 인물들의 양면성은 때로는 우습게, 때로는 섬뜩하게 느껴지기 때문. "웃어 놓고 주변 눈치를 봤다. '웃어도 되는 내용인가?' 싶더라"고 감상을 전하자 허 감독은 긍정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웃음을 예상하고 만든 장면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소감을 듣고 싶었어요. 그게 블랙 코미디적이잖아요?"
허 감독은 배우 설경구가 빚어낸 블랙 코미디적 요소들을 언급하며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첫 식사 자리에서 설경구 배우가 장동건 배우에게 소리 지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사실 웃음 포인트가 있는 장면이 아니었는데 그 신을 찍고 보니까 정말 재밌게 나온 거예요. 경구 씨는 '감독님 이거 안 쓸 거죠?'라고 물었는데 (해당 장면이) 정말 재밌어서 써버렸어요. 하하. 이렇게 현장에서 의도하지 않는 것들이 나오는 게 좋아요."
허 감독은 배우 장동건이 보여준 낯선 얼굴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동안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로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인물을 연기해 왔던 장동건은 이번 작품에서 현실에 발붙인 소아과 의사 재규를 연기했다.
"동건 씨가 그동안 조직 폭력배나 살인마처럼 강한 캐릭터를 맡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일반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고 했어요. 저 역시도 동건 씨의 그런 현실적인 면면을 마주하는 게 좋았습니다. 생활감 있는 얼굴이나 현실적인 느낌이 참 좋았어요."
영화 '보통의 가족'은 세련된 촬영 기법과 정교한 음악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관객들의 N차 관람을 부르는 요소 중 하나기도 하다. 허 감독은 조성우 음악 감독과 고락선 촬영 감독을 언급하며 이들의 협업 덕분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성우 음악 감독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덕혜옹주'까지 함께 작업했어요. 오래된 사이죠. 제가 서스펜스 드라마라는 장르를 해보지 않았지만 음악 감독은 경험이 있을 거니까. 믿는 구석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톤을) 가지고 가야 할까?' 대화도 많이 했고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 있도록 끌고 가면서 서정성을 강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음악으로 풀어냈어요. 이 영화는 음악으로 가져가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부감이 돋보이는 촬영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촬영 감독과 색감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재규의 톤인 '블랙'을 (색감으로) 썼고 부감(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촬영법)으로 찍자고 했죠. 부감은 제가 잘 쓰지 않는 건데요. 반복되는 형식으로 만들면서 관객들이 관찰하는 느낌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어요. 한걸음 떨어져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싶었고 결과적으로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영화 '보통의 가족'은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부터 제26회 우디네극동영화제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호평받았다. 사회 문제와 인상 군상을 들여다보며 관객들에게 호평받았지만 허 감독은 "흥행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요즘 분위기가 그렇죠?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영화 장르가 다양해졌으면 합니다. 이 영화가 잘 된다면 같은 장르의 작품들도 계속 제작되고 시도해 볼 텐데. 흥행하지 못하면 '평이 좋아도 결국 관객들이 안 본다'며 제작 단계에서 무산되고 말 거예요.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잘 되었으면 합니다. 장르적인 재미와 함께 인간에 대한 본성을 생각할 부분이 많은 영화니, 관심을 두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