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국가기간산업 보호, 정부·공공부문 전략적 대응 필요

2024-11-25 05:00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 초빙교수. [사진=아주경제 DB]
최근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연합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공개매수를 시도하면서 우리나라 비철금속 산업의 미래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정부가 고려아연의 이차전지 전구체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 것은 고무적이나 이제는 더욱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려아연은 단순한 민간기업이 아니다. 아연, 연, 은 등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2차전지 소재와 자원순환 등 미래 전략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니켈 제련과 전구체 생산 기술을 독자 확보한 기업으로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측면에서도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

문제는 MBK파트너스와 같은 사모펀드가 이러한 국가 기간산업을 인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사모펀드의 본질은 3~5년 내 투자금 회수를 통한 수익 실현에 있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의 투자와 기술개발이 필수적인 제련산업의 특성과 근본적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MBK파트너스의 자금 중 상당 부분이 해외 자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고려아연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는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고려아연의 이차전지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만큼, 이를 실효성 있게 보호할 수 있는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외국자본이 국가 기간산업을 인수할 때 정부가 심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주요국들은 이미 자국 핵심산업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경제산업성 주도로 설립된 산업혁신기구가 2조 엔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며, 정책투자은행(DBJ)도 3150억 엔 규모의 경쟁력강화펀드를 통해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산업은행과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번 사태에서도 전략적 투자자로서 고려아연의 경영 안정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코와 같은 국내 대표 소재기업의 전략적 참여도 검토해볼 만하다. 현재 고려아연은 현대차그룹과 배터리 소재 관련 포괄적 사업제휴를 맺고 있으며, 자회사 켐코를 통해 LG화학과 전구체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등 국내 주요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 생태계를 더욱 확대하여 포스코와 같은 국내 대표 소재기업들과도 시너지를 창출한다면, 우리나라 2차전지 소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물론 정부와 공공부문의 개입이 시장경제 원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 보호라는 대의 하에서 전략적이고 제한적인 개입은 필요하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두고 정부와 의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는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미국조차도 국가 기간산업 보호에는 예외가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경제 안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더 이상 자유시장 논리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고려아연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공공부문이 힘을 모아 국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