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얼어붙은 내수…'경기 마중물' 어디에
2024-09-02 07:00
정부가 내년 나라 살림 규모를 올해보다 3.2% 늘린 677조4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올해 지출 증가율 2.8%보다 다소 올랐지만 지난해 예산안을 짜면서 예측했던 내년 증가율 전망치 4.2%보다 낮아졌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밑도는 고강도 긴축 예산이다.
나라빚이 쌓이고 있는 와중에 2년 연속 수십조원 규모의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만큼 건전 재정 기조를 이어가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3년 연속 20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에 나섰다. 올해 구조조정 규모는 24조원이다. 부처 간 벽을 허물고 사업별 연계를 강화하는 협업 예산도 강조했다.
다만 지출이 줄면서 재정의 경기 마중물 역할은 사라졌다. 대표적인 내수 예산인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주요 항목 중 나 홀로 삭감됐다.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연구개발(R&D) 예산도 올해 감축 기조를 고려하면 사실상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경기 상황에 걸맞지 않은 판단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내수는 여전히 얼어붙은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1%포인트 낮춘 2.5%·2.4%로 예측한 핵심 원인도 내수 부진이다.
안 그래도 얼어붙은 내수가 정부 역할 없이 반등할지 의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가계의 실질소득은 지난해보다 올랐지만 2년 전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지출이 소득을 웃도는 적자 가구 비율도 1년 전보다 늘었다. 7월 소매 판매는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계에 쓸 돈이 없는데 내수 진작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의 활력은 민간이 중심이 되고 정부는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가계와 기업은 고금리 여파에 이자 갚기에도 벅차다. 장기화된 고금리에 빚은 쌓일 대로 쌓였다. 당장 기준금리를 내려도 내수 회복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곳간 지기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다. 하지만 수입이 빠듯하다고 지출을 무작정 줄이면 언젠가는 탈이 나기 마련이다. 민간의 힘이 부족할 때 그나마 여력 있는 정부가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조금은 더 공감이 가는 시점이다. 조만간 국회에 송부될 예산안에 대한 적절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