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표류하는 '전세사기특별법'...이제는 머리 맞대야

2024-05-31 06:00

건설부동산부 김윤섭 기자.

전세사기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1만7060건을 넘어섰고, 벌써 8명이 세상을 등지는 등 희생자가 발생했다.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는 계속되고 있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은 묘연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국토교통부가 대립 구도를 이어가면서 가장 시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 

국토부와 야당의 시각이 가장 크게 엇갈리는 것은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전세 만기 후 미반환된 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해 세입자에게 보상 후 구상권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피해자 단체와 야당은 지난해 6월 시행된 전세사기특별법으로 피해 회복이 어려운 만큼 정부의 적극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실현 가능성과 예산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의 지적처럼 야당안은 여러 미비점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채권이 HUG 등 공공기관에 의해 가치평가를 하고 매입 비용은 경·공매 등을 통해 회수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한 가치평가라는 표현만 있고 세부 기준이 없다. 가치 평가 후에 매입 가격이 정해지더라도 피해자들이 해당 결과를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을 비롯해 구제를 위해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하는 방안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정부안 역시 완전한 시행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해 난항이 예상된다. 먼저 '선구제, 후회수'를 주장하고 있는 야당이 쉽게 정부안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안이 기존 특별법 상 지원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있다. 작년 시행된 특별법을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주택 제도가 도입됐지만 특별법 시행 1년이 다 되도록 매입임대는 한 건에 그치고 있다. 

지난 1일 대구에서 결국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빠른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 재산과 같은 전세 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피해자들에게 특별법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다.  

야당과 정부 모두 이제는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거듭되는 정쟁 속에 피해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부터 달라져야 한다. 박상우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대한 정부 입장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앞으로는 설득이 중요하다. 국토부가 무조건 반대가 아닌 정부안을 발표하고 논의에 나선 것처럼 여론을 설득하고, 논의 과정을 이끌어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