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귤 상자 속 곰팡이 핀 귤

2024-11-11 07:00

 
[사진=신동근 기자]

겨울이 되면 귤을 상자씩 사다놓고 먹고는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개가 점점 물러지고, 그 귤에 곰팡이 피기 시작한다. 상한 귤을 바로바로 정리하면 별문제가 없지만, 며칠만 미루더라도 곰팡이는 상자 전체로 퍼진다. 정리를 조금만 미뤄도 결국 상자 전체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부동산 호황기 대규모로 늘어난 금융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일부에도 곰팡이가 피고 있다. 금융사들이 이 곰팡이 핀 부실 PF사업장에 손을 대야 할 시점이다. 각종 건전성 지표가 악화하고 있으며, 금융당국 또한 부실 PF사업장 경·공매를 서두르라는 압박을 강하게 하고있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현재 직면한 위기만 넘기고 보려는 '눈 가리고 아웅'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앞서 2금융권은 PF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 업권 공동으로 부실채권(NPL)펀드를 조성해 부실 채권을 매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NPL 펀드가 사들인 부실채권의 규모가 투자한 2금융권의 투자금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실채권이 헐값에 모르는 곳으로 넘어갈까 봐 자신들의 돈으로 다시 이를 매입한 것이다.
 
이렇게 본인 돈으로 PF사업장을 다시 매수하면, 우회적으로 사업장을 보유 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장부상 건전성 또한 개선할 수 있다.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과 금리 인하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다시 뜰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실 정리를 미루며 버티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같은 행위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위험을 이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특히 2금융권은 사업 성공 가능성이 낮은 브릿지론 상태의 PF사업장이 많다. 사업이 정리되더라도 선순위가 먼저 돈을 받고, 추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중·후순위채 비중도 높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지속적으로 부실관리를 해온 덕에 지금은 이전 저축은행 사태 발생 당시와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부실사업장 매각을 미루다 보면 가치가 더 떨어지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자금이 묶이며 추가 금융비용도 계속 발생한다. 이런 상황 속 금융사 하나에서 발생한 부실이 타 금융사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고 2024년 '000 사태'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부실채권 규모가 늘고 연체율이 꾸준히 악화하는 가운데 금융사들이 부실 PF 사업장 정리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위험을 조기에 파악하고, PF 사업장별로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만 상자 속 모든 귤이 썩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