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깜깜이 보조금 정책에 업체·소비자 모두 '혼란'
2024-03-04 05:00
전기자동차 구매 의사가 있는 잠재적 고객들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 차량 가격이다. 전기차는 저렴한 유지비와 주행 퍼포먼스, 친환경성 등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부족한 충전 인프라, 화재 발생 가능성, 높은 차량 가격 등이 구매를 망설이게 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기차를 사용하지 않는 응답자(4858명) 중 85%(4129명)가 전기차 구매 의사를 밝혔는데 이들 응답자는 전기차 구입 시 가장 큰 고려 사항으로 ‘차량 가격'(27%, 1115명)을 꼽았다. 전기차는 일반 내연기관차에 비해 30~40% 비싸기 때문에 지자체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기차 보조금이 차량 구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늑장 보조금으로 인해 소비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환경부의 전기차 보조금 확정안이 늦어지면서 매년 초 전기차 판매는 사실상 개점휴업인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현대자동차·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은 총 749대로 전월 대비 90.22% 감소했다. 애초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일부 고가 전기차를 제외하면 전기차 판매는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기차 모델 판매량이 전무한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달 현대차 아이오닉6 판매량은 4대에 그쳤고 코나와 포터도 판매량이 4대에 불과했다. 매년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2~3월에 확정되는 탓에 1월에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보조금이 확정되지 않으면서 일부 차량은 생산이 중단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현대차 인기 전기차 모델인 1톤(t) 전기 트럭 '포터2 일렉트릭'은 작년 12월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포터2 일렉트릭 전기차 보조금은 최대 2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상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면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없다.
정부의 늑장 대처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정부의 보조금 늦장 확정으로 전기차 제조사들은 판매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기차업계 관계자는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구매하려면 자금계획부터 꼼꼼히 세워야 하는데 매년 전기차 보조금 공고가 늦어져 답답한 상황이 반복된다"면서 "아직까지는 전기차 판매가 보조금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시장은 아직 얼리어답터로 초기 시장에 진입한 충성스러운 전기차 소비자들을 넘어 일반 소비자들까지 전기차를 소비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조금 정책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보급 가속화와 안정화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