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거대 플랫폼 독과점 막겠다'는 공정위원장의 아집
2024-02-26 05:00
이 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해 4대 반칙행위를 저질렀을 때 제재 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4대 반칙행위는 끼워 팔기·자사 우대·최혜 대우(유리한 거래 조건 요구)·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이다.
지배적 사업자 사전 지정 방식을 두고 즉시 반발이 일었다. 공정위는 사업자 매출과 시장점유율, 사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 사업자의 한국 매출을 정부가 파악하기 어려워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구글·메타(페이스북)·애플·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해외 거대 플랫폼은 세부 사업 내용조차 파악이 쉽지 않다. 중국 온라인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지난달 기준 국내 월이용자수(MAU)는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섰지만 국내 매출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에 국내 대형 플랫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낙인찍기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업계 목소리를 듣지 않는 불통은 사태를 더 키웠다. 공정위는 최대한 빠르게 법안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2월 중 정부안을 내놓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탓에 미국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단체이자 세계 최대 기업 모임인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말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수석부회장 이름으로 낸 성명에서 "한국이 플랫폼법 통과를 서두르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플랫폼법 조치에 필요한 투명성과 열린 대화를 보여달라고 공정위에 요구했다.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 차관도 이달 초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플랫폼법과 관련해 "협력과 투명성 보장, 이해관계자들 관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공정위 고집이 통상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관련 부처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통상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자 국내에는 필요 없는 규제로 플랫폼법을 첫손에 꼽으며 "주요 파트너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상 마찰이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 기조는 사전규제와 거리가 있다"며 쓴소리를 냈다.
반발 수위가 높아지자 공정위는 한발 물러났다. 국내외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만 플랫폼법 자체는 폐지하지 않기로 해 기업들 불안은 여전하다.
정책도 때가 있다.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는 지금은 기업 옥죄기가 우선순위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1.4% 성장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4.3%)·2022년(2.6%)보다 낮은 성장률이다. 외환위기였던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1.9%)에도 뒤졌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달 초 내놓은 2월 중간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2%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내놓은 직전 전망치(2.3%)보다 0.1%포인트 내려간 것이다. 저성장을 극복하고 경제가 다시 도약하려면 기업 활력 제고가 필수다. 적극적인 기업 운영을 가로막는 규제가 아니라 적재적소의 지원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새해에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지고,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뛰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 규제를 지속적으로 혁파하고, 첨단 산업에 대한 촘촘한 지원을 통해 기업이 창의와 혁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 신년사를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