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도체 겨울론'과 '6만 전자'

2024-09-30 06:00

명진규 증권부장

모건스탠리의 '겨울이 닥친다(Winter looms)' 보고서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대로 급락했다. 함께 하락했던 엔비디아, SK하이닉스 등이 마이크론의 어닝 서프라이즈 이후 낙폭을 줄였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한겨울 눈밭을 헤매고 있다.

삼성전자가 적자를 기록했을 때 주가가 5만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강점은 대량생산, 대량공급을 통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는 점이다. PC와 스마트폰 시대는 반도체 초호황기를 견인했고 삼성전자를 1등 자리에 올려 놓았다.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가 표준을 정하면 거기 맞춰 잘 만들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과거의 D램 시장이었다. 지금은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주문을 넣은 엔비디아, AMD가 품질을 테스트하고 쓸지 말지 결정한다. 상황이 급변하며 SK하이닉스는 바뀐 게임의 규칙을 따랐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해 1월 6만원대였던 삼성전자 주가는 엔비디아 공급 기대감을 양분으로 지난 7월 8만원대로 상승했다. 2021년 1월 장중 기록했던 역사적 신고가 9만6800원을 경신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식, AI 버블 논란, 엔비디아 고점 논란이 이어지며 6만원대로 주저앉았다. 1년 6개월 동안 오르내리며 상승했던 주가는 두 달이 채 못 돼 제자리로 돌아왔다. 

최근 삼성전자 주요 임원 30여 명이 일제히 자사주를 매입했다. 현 주가가 저점이라는 신호를 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8월 말부터 시작된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은 9월 초 등기임원인 한종희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 박학규 사장이 참여한 뒤 미등기 임원들로 확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답다는 얘기가 나온다. 수개월 전 위기를 부르짖으며 임원들이 주 6일 근무할 때와 비슷하다. 

삼성전자 성장 과정은 패스트 폴로어의 모범답안에 가깝다. 세계 유수 반도체 업체들을 따라잡고 휴대폰 시장에선 애플과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번번이 놓쳤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그리기도 했다. 증강현실(AR) 부문의 천재라고 불리던 프라나브 미스트리, AI 석학 세바스찬 승(승현준)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3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이들이 재직 중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주고 데려온 이들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떠났을까?  

최근 이렇게 영입됐던 인재들과 함께 일을 했던 전직 삼성전자 임원을 만났다. 그들이 다양한 기술과 비전을 제시했지만 당장 현실화해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현업과 충돌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왜 영입했는지를 묻자 그들의 비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이주계획을 현실화하는 것이 사업의 최종 목표이자 비전이라고 답한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를 필수 가전제품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스티브 잡스는 인간과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구축을 사업 비전으로 삼았다.

지금 삼성전자의 비전은 무엇일까. 주 6일 회사에 출근해 회사 걱정을 하고, 애사심을 부르짖으며 자사주를 사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