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아무런 문제삼지 않다가…총선 앞두고 은행권 때리기?

2024-02-12 14:00
은행권 "당국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광범위한 '먼지털기'에 사기저하
자금중개기관이자 금융시장 주체
'채찍'은 물론 '당근'으로 균형점 잡아야

[사진=연합뉴스]

최근 정부의 '사정 칼날'이 연일 은행권을 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의 대출 담합 혐의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한 데 이어, 최근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현장조사도 함께 이뤄지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 내부에선 당국의 이번 조치들에 억울함을 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먼저 공정위는 은행들이 개인·기업 등에 담보대출을 하면서 거래 조건을 담합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이다. 물건별 담보인정비율(LTV) 등 세부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출 조건이 고객에게 지나치게 유리하지 않도록 담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권은 담보인정비율은 은행의 경매·낙찰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경매 내용은 열린 정보며, 은행 산업 특성상 동일한 시장 상황에서 은행별 여신 전략이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가계대출 LTV는 금융당국이 지역별로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이 당국 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를 담합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홍콩ELS 불완전판매 이슈와 관련해선, 은행권은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충분한 가입 의사를 거치고 가입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이 얘기하는 가이드라인은 2019년 당국이 내놓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말한다. 당국은 과거 라임·옵티머스·DLF(파생결합펀드) 펀드 사태 이후 대대적인 투자자 보호 조치 방안을 내놨다. 이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일정 수준(20~30%) 이상인 ELS 등 주식연계상품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규정하고, 녹취·숙려기간·핵심설명서 교부·공시 등 관련 절차만 거치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은행권은 당국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불완전판매로 여론몰이가 되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은행권은 지난 연말 2조원 규모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는 등 정부의 상생 기조에 적극 부응하고, 자율 프로그램을 실행해 다각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돌아온 것은 당국의 날카로운 칼날이라며 하소연이다. 은행권은 고금리 장기화 속 이자장사만 한다는 정부의 비판에 자발적으로 성과급 등을 줄이기도 했다. 

잘못한 금융사들이 있다면 당국이 마땅히 제재를 가하고, 그에 응당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당국이 정해놓은 틀에서 영업을 했는데도 광범위하게 조사가 진행될 경우 은행권 입장에선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전까지 해당 사안에 대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지난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갑질’ 질타에 이은 후속조치들이어서 관련 업계의 씁쓸함이 더해지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오는 4월로 예정된 총선이 다가오면서 타격감이 큰 은행권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국민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은행은 가계와 기업체 등의 자금이 원활히 유통될 수 있도록 돕는 자금중개기관이자, 금융시장의 중요한 주체다. 광범위한 은행권 때리기는 국내 경제를 위기로 내몰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채찍'과 함께 '당근'으로 균형점을 잡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