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기와 채무불이행 사이 혼란…구제책 주는 법률 지원 필요
2024-01-22 18:02
# A씨는 지인에게 1년간 우유 배달을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10개월이 지나도록 지인은 한 달치 대금조차 지불하지 않았다. 지인을 믿고 기다렸지만 끝내 연락까지 피하자 A씨는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했다. 사기 혐의였다. 그러나 단순히 '우유값을 주지 않으려 했다'는 고소장은 접수조차 반려됐다.
사기 범죄는 서민들을 노리는 대표적인 금융 범죄로 최근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보이스피싱 등 기술을 이용한 범죄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단순 채무불이행 사건을 사기로 혼동해 경찰서를 방문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고 일선 경찰들은 입을 모은다. 무리하게 사기 사건으로 고소를 진행했다가 분쟁은 더 길어지고, 합의 여지는 좁아지는 등 일이 더 꼬일 수 있다.
오랜 지인, 동업자 관계에서 차용증 없이 목돈을 빌려주는 사례. 또는 아는 사람에게 싼값에 서비스 용역 등을 받기로 한 사례 등. 신뢰를 기반으로 성립한 채무 관계가 쟁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뢰를 저버렸다는 배신감과 목돈을 날릴 수 있다는 조바심에 시달려 형사 처벌로 한 방 먹여주고 싶어 하는 탓인지 '사기를 당했다'고 쉽게 말한다.
채무불이행과 사기의 가장 큰 차이는 '기망'이다. 처음부터 채무를 이행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음에도 그런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 증명돼야 사기죄에 해당한다. 돈을 빌려줬을 경우 자금의 용도나 변제 계획을 속인 경우도 포함된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증명이 없다면 손해를 입었더라도 사기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우유 배달 대금을 받지 못한 A씨도 증명이 부족했다. 그는 고소장이 반려당하고 경찰서 안내에 따라 민사상 채무이행 소송 소장을 작성하기 위해 법률지원센터에 방문했다. 그런데 센터에서는 고소장을 제출하라고 안내하면서 혼란을 겪었다. 당시 A씨를 맡았던 경찰서 법률지원 창구의 변호사는 "사기죄 성립과 무관하게 채권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에 대한 소장이나 지급명령신청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무작정 고소장을 제출하라는 건 직무를 방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며 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