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검찰, 양승태 前 대법원장에 징역 7년 구형..."사법부 신뢰 무너뜨렸다"
2023-09-15 13:19
檢 "개별 법관의 일탈 아닌, 조직적 직무 범행"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5‧사법연수원 2기)에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5일 검찰의 구형으로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은 기소 1677일, 약 4년7개월 만에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11기)‧박병대(12기) 전 대법관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결심 공판은 검사가 피고인에게 선고돼야 할 적정한 형량을 재판부에 요청하고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들은 뒤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지정하는 절차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선고는 이르면 올해 연말 나올 전망이다.
검찰은 "이 사건은 법관 독립을 침해하고 권한을 남용한 사건으로 국민적인 여론이 일 정도로 사법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그간 법원은 국가권력 남용을 직권남용으로 단죄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의 가치를 수호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법관의 재판 독립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한편, 신속한 재판 사무를 지원하는 책무와 권한을 위임받은 사법행정권자"라며 "이 사건 범행은 개별 법관의 일탈이 아닌, 사법행정 담당법관들이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업무시스템에 따라 수행한 직무 범행"이라고 구형 사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10가지 혐의(직권남용,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등)를 적용했다. 범죄사실은 47가지로 △재판거래(특정 대가를 조건으로 재판 결과를 거래하는 행위)와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법원행정처 비자금 불법 유용 등 크게 네 갈래로 구분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 등을 상대로 상고법원 도입 및 해외 법관 파견 등 조직의 이익을 얻고자 이른바 ‘재판거래’를 계획 및 실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거래 사건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형사사건 등이다.
사법행정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한 판사들의 의견 표명을 억압하고 문책상 인사조치를 단행했다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혐의도 받고 있다.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해 인사조치를 검토하고, 법원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법관들을 중심으로 선호 희망지에서 배제하는 등 문책성 인사를 했다는 내용이다.
법관 블랙리스트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탄희 의원이 판사 시절 법원행정처 심의관에 발령난 직후 "법원행정처가 관리하는 판사 동향 리스트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시를 수차례 받고 사표를 내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부산 스폰서 판사' 의혹 및 '정운호 게이트' 등 판사들의 비위를 은폐 및 축소하거나 수사기밀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영장재판에 개입을 시도했다는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로 책정된 3억5000여만원을 비자금 명목으로 빼돌린 뒤 고위 법관 '격려금'으로 사용한 의혹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재판거래와 헌재 내부기밀 불법수집, 법관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 33개 혐의로, 고 전 대법관은 법관 블랙리스트와 재판 개입, 판사 비위 은폐 등 18개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은 지난 2019년 3월 25일 첫 공판준비기일 절차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5월 8일 첫 공판이 열린 이후 이날 결심 전까지 총 276차례의 공판기일이 열렸다.
첫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며 "어떤 공소사실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고 전 대법관도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법원 내 형사법정에 서고 보니까 다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미어진다"며 "무엇보다 제 가슴을 무겁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전례 없이 훼손됐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이후 재판 지연 문제가 노출됐다. 재판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대부분을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은 증인만 무려 211명을 신청했다. 또 법원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교체되자 재판 갱신 절차를 위해 법정에서 약 7개월간 과거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재생되기도 했다. 코로나19와 양 전 대법원장의 폐암 수술도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