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前대법원장, 오늘 검찰 구형...직권남용 적용 논리 '주목'

2023-09-15 09:14
검찰, 양승태에 10개 혐의·47개 범죄사실 적용
재판 거래·재판 개입·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1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5‧사법연수원 2기) 등에 대한 1심 재판이 기소 1677일, 약 4년7개월 만인 15일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다.

71년 사법부 역사상 처음 '대법원장 구속기소'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검찰이 얼마만큼의 형량을 재판부에 요청할지 주목된다. 또 대법원의 재판 거래와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실체가 있는 것인지, 사실관계가 인정된다면 이 같은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와 관련한 검찰의 논리와 설득력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1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11기)‧박병대(12기) 전 대법관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진행한다.
 
결심 공판은 검사가 피고인에게 선고돼야 할 적정한 형량을 재판부에 요청하고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들은 뒤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지정하는 절차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선고는 이르면 올해 연말 나올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임기 6년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로 2019년 2월 11일 구속기소됐다.
 
재판거래‧재판 개입‧법관 블랙리스트‧비자금 유용 등 크게 네 갈래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10가지 혐의(직권남용,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등)를 적용했다. 범죄사실은 47가지로 △재판거래(특정 대가를 조건으로 재판 결과를 거래하는 행위)와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법원행정처 비자금 불법 유용 등 크게 네 갈래로 구분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 등을 상대로 상고법원 도입 및 해외 법관 파견 등 조직의 이익을 얻고자 이른바 ‘재판거래’를 계획 및 실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거래 사건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형사사건 등이다.
 
사법행정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한 판사들의 의견 표명을 억압하고 문책상 인사조치를 단행했다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혐의도 받고 있다.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해 인사조치를 검토하고, 법원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법관들을 중심으로 선호 희망지에서 배제하는 등 문책성 인사를 했다는 내용이다.
 
법관 블랙리스트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탄희 의원이 판사 시절 법원행정처 심의관에 발령난 직후 "법원행정처가 관리하는 판사 동향 리스트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시를 수차례 받고 사표를 내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부산 스폰서 판사' 의혹 및 '정운호 게이트' 등 판사들의 비위를 은폐 및 축소하거나 수사기밀을 보고하도록 지시하고, 영장재판에 개입을 시도했다는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로 책정된 3억5000여만원을 비자금 명목으로 빼돌린 뒤 고위 법관 '격려금'으로 사용한 의혹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재판거래와 헌재 내부기밀 불법수집, 법관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 33개 혐의로, 고 전 대법관은 법관 블랙리스트와 재판 개입, 판사 비위 은폐 등 18개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1심만 4년7개월..."국민들의 사법부 신뢰 전례 없이 훼손"
1심 재판은 지난 2019년 3월 25일 첫 공판준비기일 절차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5월 8일 첫 공판이 열린 이후 이날 결심 전까지 총 276차례의 공판기일이 열렸다.
 
첫 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며 "어떤 공소사실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고 전 대법관도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법원 내 형사법정에 서고 보니까 다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미어진다"며 "무엇보다 제 가슴을 무겁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전례 없이 훼손됐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이후 재판 지연 문제가 노출됐다. 재판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대부분을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은 증인만 무려 211명을 신청했다. 또 법원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교체되자 재판 갱신 절차를 위해 법정에서 약 7개월간 과거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재생되기도 했다. 코로나19와 양 전 대법원장의 폐암 수술도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