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5년 만에···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서 '사법농단' 47개 범죄혐의 모두 '무죄'
2024-01-26 19:41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도 무죄
공소장만 300쪽 달해...법원 "범죄 증명 없어"
검찰, '무리한 기소' 비판 면하기 어려워
공소장만 300쪽 달해...법원 "범죄 증명 없어"
검찰, '무리한 기소' 비판 면하기 어려워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5‧사법연수원 2기)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47개 범죄 사실로 기소된 지 1810일, 약 4년 11개월 만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11기)‧박병대(12기) 전 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판 거래(특정 대가를 조건으로 재판 결과를 거래하는 행위)·재판 개입·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공소사실로 특정된 모든 범죄가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헌정 사상 첫 구속기소된 대법원장...범죄사실만 47가지
이후 2018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사건을 맡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 수사팀장인 3차장검사는 한동훈 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되면서 2019년 2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됐다. 2011년 9월 취임 후 임기 6년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등 10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범죄사실은 47가지로 △재판거래(특정 대가를 조건으로 재판 결과를 거래하는 행위)와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법원행정처 비자금 불법 유용 등 크게 네 갈래로 구분된다.
박 전 대법관은 재판거래와 헌재 내부기밀 불법수집, 법관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 33개 혐의로, 고 전 대법관은 법관 블랙리스트와 재판 개입, 판사 비위 은폐 등 18개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선고 직후 입장문 내고 "판결문 분석 후 항소할 것"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은 법관 독립을 침해하고 권한을 남용한 사건으로 국민적인 여론이 일 정도로 사법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박·고 전 대법관에게는 각각 징역 5년과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1심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명쾌하게 판결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첫 재판부터 "검찰의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며 "어떤 공소사실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의 치열한 법리 다툼은 재판이 지연된 주 원인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대부분을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은 증인만 무려 211명을 신청했다.
또 법원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교체되자 재판 갱신 절차를 위해 법정에서 약 7개월간 과거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재생되기도 했다. 코로나19와 양 전 대법원장의 폐암 수술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재판 절차를 잘 아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전략을 펼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앞서 판결을 받은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이 대부분 무죄를 받은 데 이어 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까지 1심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