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개입한 印 정부, 이번에는 쌀 가격 잡을 수 있을까

2023-08-30 09:52
지난해의 일부 쌀 수출 통제에서 모든 쌀로 범위 확대
과거 수출 통제 시 가격 안정화 실패 경험
정부 개입이 능사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

인도 뭄바이의 한 시장에서 여성이 쌀을 골라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 곡물 시장에 전운이 감돈다. 곡물 시장의 큰손인 인도가 쌀을 비롯, 각종 곡물의 수출량을 조절하고 나서면서다. 인도는 세계 제1의 쌀 수출국이다. 인도의 쌀 수출 금지가 본격화되자 아시아 전체적으로 쌀 가격 폭등세가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 정부의 식량 수출 통제가 얼마나 더 장기화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식품 가격 안정화에 주력할 의사를 밝힌 만큼 당분간 수출 통제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공급 통제식 시장 개입으로 가격 안정화에 성공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수출 통제 방식은 시장의 신뢰를 깎고, 애먼 농민만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인도, 싸라기·非 바스마티 쌀에 이어 바스마티·찐쌀도 수출 통제 
인도 정부는 해외로 수출하는 모든 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쌀 가격 통제를 위해 싸라기(부스러진 쌀)와 비(非) 바스마티 백미에 이어 바스마티(길쭉하게 생긴 쌀)와 찐쌀(제분 전에 익힌 쌀)도 통제 대상에 올렸다. 해외 수출 대신 내수를 우선시해 가격을 잡겠다는 것이다.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 상무부는 바스마티 쌀 수출 가격 하한선을 톤(t)당 1200달러(약 160만원)로 설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바스마티 백미가 고급 바스마티로 위장돼 불법 수출되는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싸라기 수출을 금지했고 올해 7월 비바스마티 백미도 막은 바 있다. 

앞서 인도 상무부는 찐쌀에 20% 수출관세를 부과하겠다고 25일 고시했다. 고시일 오후부터 즉각 시행에 들어갔고 10월 15일까지 시행된다. 지난해 인도의 찐쌀 수출량은 740만톤으로, 전체 쌀 수출량의 3분의1을 차지했다. 관세 20% 부과를 통해 740만톤의 수출분을 인도 국내로 돌려 쌀 공급을 늘리겠다는 의도에서다. 인도 정부는 이를 통해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세계 시장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 정부가 쌀 수출 규제를 하는 이유는 올해 인도 전역에 이상 기후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올해 엘리뇨와 몬순 기후로 인해 기후 변동이 극심했다. 바다와 육지의 온도차이가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홍수가 찾아오고 다른 곳에서는 가뭄이 발생했다. 

서벵골주, 우타르프라데시주, 비하르주 등 주요 쌀 수확지는 평년보다 강우량이 15%가량 줄었다. 매해 쌀을 1억3500만톤(t) 생산하고 2100만톤 수출하는 인도의 쌀 시장이 흔들렸다. 이는 전 세계 쌀 수출 시장의 40% 가까이 차지하는 양이다. 더욱이 인도의 몬순 기후는 9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라,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쌀 공급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쌀 시장만 불안한 것이 아니다. 몬순 기후로 구황 작물 전반이 흉작에 들어섰다. 대표적으로 토마토와 양파도 공급 불안을 겪고 있다. 토마토 가격은 전달 대비 약 400% 올랐고 양파는 전달 대비 약 20% 오름세를 보였다. 토마토와 양파는 인도 식탁에서 매우 중요한 작물로 꼽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 정부는 식품 시장에 있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수출을 통제해 내수 가격부터 진정시키려는 의도다. 양파 수출에는 4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10월부터는 설탕의 수출도 규제하기로 했다.
 
밀·쌀 수출 통제로 가격 안정화 실패…시장 불안정만 야기
문제는 인도 정부의 수출 규제가 가격 안정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인도 정부의 곡물 수출 규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도 정부는 가격 안정화를 위해 밀과 밀가루 수출을 규제한 바 있다. 인도 대외무역총국은 지난해 5월 봄철 더위로 밀 공급량이 줄고 밀 가격이 최근 20~40% 오르자 수출을 금지시켰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내년 중반까지 인도가 밀 수출을 해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지만, 인도의 밀 가격은 안정되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 6개월 동안 가격이 치솟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밀 가격은 톤당 2만5446루피(307.33달러)로 지난 2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인도의 정부 실패를 두고 허술한 판단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도의 정부 실패에 대해 "지난해 수출 금지에도 두배에 가까운 밀이 출하됐다. 금지 조치 전에 체결된 계약이 이행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 밀은 수출 선적이 가능한 예외를 두도록 로비를 할 수 있었다. 쌀에도 비슷한 경우가 나타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밀의 종류를 세분화하거나 예외 상황을 만들어 공급하는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앞서 지난해 단행된 쌀 수출 금지 조치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9월 싸라기 수출 금지를 단행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예외적인 모습의 수출 승인 비중이 늘어나는 등 갈지자 행보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3월 싸라기 수출 금지 상황에서 감비아와 세네갈에 각각 10만톤과 25만톤의 쌀 수출을 허용했다. 수출 금지 상황에서 예외를 만드는 구멍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국 쌀 시장의 안정화는 요원해졌고 풍선효과까지 막기 위해 수출통제 대상을 싸라기에서 바스마티 등으로 계속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잦은 정부 개입은 인도 시장에 대한 신뢰 훼손할 것"
인도 정부의 시장 개입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쌀 수출을 금지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있다는 것이다. 

잦은 정부 개입은 시장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농업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실추시킨다는 주장이다. 푸르니마 바르마 인도 경영 연구소 농업 경영 센터 조교수는 "인도가 세계 쌀 시장에서 선두자리인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없다. 빈번한 정책 변경은 인도 수출업자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구매자도 (인도 수출업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인도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국제 농업 시장에 불필요한 신호를 주는 점도 우려했다. 바르마 교수는 "이번 쌀 수출 규제로 인해 심각한 매수와 투기가 발생했고 국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해소되기는커녕 글로벌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인도의 수출 금지 발표가 미국 내에서 공황에 가까운 구매를 촉발한 부분이 있다고 짚었다. 

바르마 교수는 곡물 재고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거론했다. 아울러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통한 소비자 구제 등을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농민들을 희생양 삼는 정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CNN은 인도 하리아나주 농민의 목소리를 인용해 시장 개입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하리아나주는 올해 홍수로 농작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곳이다. 

CNN은 흉작으로 인한 시장 가격 상승은 농민들에게 큰 이득이 되지 않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출금지 조치는 농민들의 삶을 악화시키고 소비자 물가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농민은 "쌀을 수출하지 않으면 이익을 남길 수 없다. 이번 수출 금지 조치로 우리 농민의 삶은 끝장날 것"이라고 CNN에 우려를 전했다. 

한편, 지난 16일 아시아 쌀값의 벤치마크인 태국 5% 도정 쌀 가격은 톤당 61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9일 톤당 648달러까지 오른 뒤 소폭 떨어진 것이다. 9일 가격은 2008년 10월 이후 최고가로 전년 대비 50% 상승한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쌀 수출 1·2위 국가인 인도와 태국에서 수확이 차질을 빚는 것과 함께 인도의 쌀 수출금지 조치를 국제 쌀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