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골프장 속으로] ② 제1회 디 오픈 개최지, 프레스트윅 골프클럽

2023-08-15 09:00
영국 골프장 유랑기

프레스트윅 골프클럽 18번 홀 두 번째 샷 지점, 사람들과 버스가 깃발 뒤에 서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디 오픈 챔피언십(이하 디 오픈)이 올해로 151회를 맞았다. 올해는 영국 잉글랜드 호이레이크의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에서 개최됐다. 대회 결과 미국의 브라이언 하먼이 우승했다. 영국인들의 야유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하먼의 우승은 지난 150회를 뒤로하고 200회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디 오픈은 1860년 시작된 가장 오래된 남자골프 메이저 대회다. 대회 개최 이유는 새로운 챔피언을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매년 우승자에게 '올해 챔피언 골퍼'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렇다면 1회 개최지는 어디일까.

바로 영국 스코틀랜드 에이셔에 위치한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이하 프레스트윅)이다. 프레스트윅은 1851년 개장했다. 처음에는 12홀 규모였다. 설계자는 올드 톰 모리스다. 첫 대회는 하루에 세 바퀴(36홀)를 도는 방식이었다. 우승자에게는 회원들이 사비를 털어 장식한 챔피언 벨트를 증정했다.

초대 우승자는 윌리 파크다. 2회 대회에서는 설계자인 모리스가 우승컵을 들었다. 모리스는 이후 4회 더 우승했다. 마지막 우승은 1867년이다. 그때 세운 최고령 기록(46세 102일)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모리스는 이후 프레스트윅에서 골프를 배운 자신의 아들(영 톰 모리스)을 내보냈다. 아들은 1년 뒤인 1868년 최연소 우승(17세 156일)을 시작으로 1872년까지 최다 연승(4승, 1871년 미개최)을 기록했다. 이곳에서 열린 마지막 디 오픈은 1925년이다. 이후에는 개최되지 않았다.

지난 1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레이디스유러피언투어(LET) 공동 주관 프리디 그룹 위민스 스코티시 오픈 취재 차 영국 스코틀랜드 에이셔에 방문했다. 

운이 좋게 티 타임이 잡혔다. 역사적인 골프장에서 라운드할 기회였다. 티 타임은 오전 10시 30분. 전날 밤 설레는 마음으로 스포츠용품 할인점(스포츠 다이렉트)에 방문했다.

여러 메이저 브랜드가 있었지만 슬레진저가 눈에 띄었다. 공, 장갑, 신발 등이 모두 저렴했다. 골프공은 두 더즌에 18파운드(3만원), 골프 장갑은 5파운드(8400원), 골프화는 19파운드(3만2000원)였다. 다 해도 42파운드(7만1000원)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오전 7시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프레스트윅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다. 클럽하우스를 열기도 전에 도착했다고 직원들이 놀랐다.

그린 재킷을 입은 신사 두 명이 반갑게 맞이했다. 회원으로 추정되는 10명 이상의 골퍼들도 "좋은 아침" "환영한다" 등의 인사를 건넸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티 타임을 확인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샤워 시설은 3개지만 아늑했다. 프로숍으로 향했다. '첫 번째(1st)' '디 오픈 발상지(Birthplace of The Open)' 등이 모든 상품에 적혀있었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부심은 클럽 하우스 전체를 뒤덮은 액자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액자 중에서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1986년 잭 니클라우스가 기록한 스코어카드가 있었다. 이 스코어카드는 큰 의미가 있다. 메이저 최다 우승(18승)이자, 마스터스 최고령 우승(46세 82일)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프레스트윅 골프클럽 캡틴들의 사진이 클럽하우스 다이닝 룸을 뒤덮었다. [사진=이동훈 기자]
분주하게 영업을 준비하던 한 직원은 역대 캡틴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다이닝 룸을 소개했다. 가장 처음에는 1851년 주장을 맡은 에글린턴 백작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멤버십 라운지와 스모크 룸은 회원 전용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2층 카디널 룸으로 향했다. 2층에도 수많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각 창문에는 회원들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구비됐다.

어느덧 티 타임 시간이 다가왔다. 퍼팅 그린으로 가니 고리버들 바구니(Wicker baskets)가 자리했다. 전통적인 골프 깃대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대회나 골프장에서 종종 사용된다.
 
망원경이 프레스트윅 골프클럽 2층 카디널 룸 창가에 설치돼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골프채는 지인에게 빌렸고, 전동 트롤리(모토 캐디)를 사용했다. 프로숍에서 20파운드를 지불했다. 전동 트롤리에는 GPS가 내장돼 있다. 수동 트롤리는 7파운드였다. 프로숍에 금액을 지불하면 모토 캐디는 배터리를, 수동 트롤리는 핸들을 사용하라고 준다.

레일 웨이(기찻길)라 불리는 1번 홀 티잉 구역에는 그린 재킷을 입은 신사가 자리했다. 인사를 나누고 설명을 들었다. 대회에 출전한 기분이었다. 설명은 5분 동안 계속됐다. 이후 5시간 내내 설명을 떠올려야 했다. 전통적인 링크스 코스라 홀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첫 홀은 평평했지만 이후부터는 평지를 만나기 어려웠다.

3번 홀(카디널) 티잉 구역에 올랐다. 동반자들과 한참을 상의했다. 어디가 그린인지 등이다. 티샷한 뒤 긴 카디널 벙커를 맞이했다. 나무로 장식된 턱은 높게 만 느껴졌다. 공을 날려 보낸 뒤 흰색 돌로 표시해 둔 길을 따라 올라갔다.
 
히말라야라 불리는 5번 홀 티잉 구역, 언덕 오른쪽에 서 있는 골프장 직원이 날아간 공의 방향을 알려준다. [사진=이동훈 기자]
이 골프장에는 두 산맥 이름이 있다. 바로 히말라야와 알프스다. 파3인 5번 홀이 히말라야로 불린다. 티잉 구역에 오르면 높은 언덕이 골퍼를 맞이한다. 그린 위치를 알려주는 색 표시를 보고 공을 날려야 한다. 언덕 너머에 있는 그린은 보이지 않는다. 종소리가 들리면 티샷할 수 있다. 골프장 직원이 티샷을 지켜본다. 공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티샷 이후 언덕을 오르면 분지가 나온다. 잘 꾸며진 곳이지만 내 공 찾기 바쁘다.

7번 홀(몽크톤)은 가장 어려운 홀이다. 무려 10개의 벙커가 포진돼 있다. 넓어 보이는 페어웨이에 현혹되면 벙커에 빠진다. 쭉 진행하다 보면 15번 홀(내로우)로 돌입한다. 이때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오래된 홀끼리 붙어 있다. 사람들이 홀을 넘나들기도 한다.
 
동반자들과 전동 트롤리가 알프스 산맥을 오르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 절경이 펼쳐진다. [사진=이동훈 기자]
파4인 17번 홀은 두 번째 산맥인 알프스다. 1851년부터 유지되는 홀이다. 티샷 이후 언덕을 넘는 블라인드 샷을 해야 한다. 히말라야 티샷과 비슷하다. 전동 트롤리와 함께 정상에 오르면 큰 벙커와 그린을 내려다볼 수 있다. 펼쳐진 절경에 환호가 터진다.

마지막(18번) 홀은 클록이다. 깃대 뒤에 자리한 클럽하우스의 큰 시계를 의미한다. 시계를 보고 공략하면 깃대 방향이다. 비거리가 긴 사람은 단박에 그린을 공략할 수 있다. 실수가 나온다면 연습 중인 골퍼들이 황급히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1925년 이후 디 오픈을 개최하지 못했다. 코스 자체가 짧고(파71·6544야드) 좁다. 실제로 1925년 디 오픈 당시에는 안전 문제가 대두됐다. 타이거 우즈만큼 인기가 있었던 영국 골퍼 맥도널드 스미스 때문이다. 스미스에게는 만 명이 넘는 갤러리가 붙었다. 스미스는 "관중이 방해된다"고 말했다. 결국 우승은 미국의 짐 번스에게 돌아갔다. 스미스는 1949년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다. 메이저는 무관이지만, 상위 10위에 16차례나 올랐다.
 
챔피언 벨트 위에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컵인 클라레 저그가 올려져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