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2027년까지 ICT 인재 390만명 부족…"여성 고용 확대가 해법"

2023-07-15 18:50
STEM 여성 이탈 줄이고 지속 성장 방안 마련해야
"한국도 STEM 여성 인재 이탈 지점 유럽과 유사"
WISET 정책연구센터, 맥킨지 보고서 분석 및 제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럽 지역 전반에 걸쳐 2027년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 인재 390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입학하는 단계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공 분야에서 취업하는 단계에 발생하는 ‘여성 인재 누수’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기술 인재 부족 문제를 풀 열쇠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디지털 신기술 분야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학기술·ICT 분야에서 여성 인재를 활용해야 한다는 국내 전문가 진단과 일맥상통한다.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정책연구센터는 ‘유럽의 기술인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책: 기술 분야 여성 참여 확대’ 보고서를 통해 유럽에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여학생 유입과 사회 진출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인재 이탈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을 짚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앞서 유럽에서 여성 기술 인재 부족 현상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 맥킨지 보고서(Women in tech: The best bet to solve Europe’s talent shortage)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인용된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국은 오는 2027년까지 기술 인재 수요와 공급 간 격차가 140만~39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 분야 여성 종사자 비율을 현재(22%) 두 배 수준인 45%까지 늘리거나 2027년까지 여성 인재 390만명을 추가 배출하면, 인재 부족 문제를 해소할 뿐 아니라 2600억~6000억 유로(약 378조~872조원) 규모 GDP 증가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맥킨지는 유럽의 초·중등학교부터 직장까지 STEM·ICT 경력 경로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해 기술 분야 여성 인재가 부족한 원인을 파악했다.

유럽에서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STEM 교육 학업성취도 면에서 뒤처지는 징후가 없다. 불가리아, 핀란드, 라트비아, 스웨덴에서는 오히려 여학생의 과학·수학 시험 성적이 남학생보다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유럽에서 대학 진학 단계에 STEM 학과에 진학하는 여학생 비중은 평균 18%포인트 감소(고등학교 여성 비율 49%→학사 입학 여성 비율 31%)한다. WISET 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특히 ICT 분야에 대한 여학생 참여는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 시 상대적으로 많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중도 이탈’ 원인은 두 가지로 파악됐다. 첫째는 중등교육 단계에서 여학생이 STEM 진로 선택 시 남학생보다 교사, 부모, 동급생의 지지를 훨씬 적게 받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여학생이 스스로 STEM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일부 교사의 ‘사소하지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여학생을 이 분야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사가 STEM 과목 수업에서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 예시 질문, 토론, 실습 등 더 많은 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그런 행동으로 꼽혔다.
 
유럽연합 27개국 STEM 분야 여성 인재 이탈 지점 [자료=McKinsey & Company, WISET 정책연구센터 보고서 재인용]

맥킨지 보고서는 대학 졸업 후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에서 두 번째 여성 인재 감소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서 STEM 분야 전공자가 기술 분야 직종에 취업하는 비율을 보면 남성은 44%인데 여성은 거의 절반 수준인 23%만 기술 분야 직종에 취업한다. 유럽에서 전체 기업 내 기술 분야 직무 종사자의 여성 비율은 22%인데, 이는 유럽 기술(tech) 기업 종사자 중 여성 비율(37%)보다 낮다. 이는 여성 인력이 기술 기업 내에서 전문직보다는 기술 관련 보조 업무와 제반 업무에 종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체 직무별 여성 종사자 비율을 보면 △프로덕트 매니저나 UI·UX 디자이너의 ‘제품 디자인 및 관리(46%)’ △데이터 과학자, 머신러닝 엔지니어의 ‘데이터 과학·공학·분석(30%)’ △IT비즈니스 컨설턴트, 솔루션 엔지니어의 ‘IT 컨설팅(22%)’ △풀스택 엔지니어, 기술 설계자의 ‘소프트웨어 공학 및 아키텍처(19%)’ △펌웨어·자동화 엔지니어의 ‘핵심 엔지니어링(18%)’ △시스템 엔지니어, 인시던트 매니저의 ‘컴퓨팅 및 운영(15%)’ △데브옵스 엔지니어, 사이트 안정성 엔지니어, 클라우드 엔지니어의 ‘데브옵스 및 클라우드(8%)’ 순으로 높았다.

평균 여성인력 비율이 30%인 데이터 과학·공학·분석 직군 안에서도 데이터 엔지니어 직종 여성 비율은 18%, 머신러닝 엔지니어 직종 여성 비율은 13%였다. 함께 묶이는 직군 내 직종 간 여성 비율 격차가 12%포인트, 17%포인트에 이른다. 보고서는 “기술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직종에서 여성 비중이 특히 낮고 이는 주요 유망기술 직종에서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못하게 돼 성 격차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망기술 직종에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할 가능성을 방지하고 여성 인력 참여를 늘릴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 27개국 ICT분야 여성 인재 이탈 지점 [자료=McKinsey & Company 보고서, WISET 정책연구센터 보고서 재인용]

맥킨지는 유럽 기업이 기술인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참여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기업 정책 재구성(Reframe) △인재 유지(Retain) △인력 재배치(Redeploy) △인재 양성 확대(Ramp up) 등 ‘4R’로 함축한 네 가지 전략을 제안했다.

기업 정책 재구성 전략은 일·생활 균형적인 인재관리(HR) 정책과 네트워크 지원 등으로 기술 분야에서 여성이 고립되는 일을 줄이고 디지털 일자리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재택(원격)근무, 유연 근무 시간제, 현장 보육 제공을 통해 여성 재직자 이직률을 낮추고 여성 리더 확대 효과를 얻는 방안을 예로 들 수 있다. 맥킨지는 여성이 디지털 일자리에서 성공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 두면 과학기술 분야 여성 인재 수를 48만~100만명 늘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유럽에서 가정 돌봄 책임으로 직장을 잃는 여성은 7%가량(남성은 0.5%)이며 여성 4명 중 1명은 일과 삶의 균형 부족 때문에 기술 분야 경력을 떠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인재 유지 전략은 경력 중간 지점에서 업계를 떠나는 기술 분야 여성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다. 여성이 기술 분야를 떠나는 두 가지 주된 이유는 ‘기업이 여성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과 ‘더 나은 기술 분야 직책을 원하는 여성은 이직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으로 나타났다. 기술 분야 여성 인력이 경력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면 유럽 기업은 이 분야 여성 종사자 수를 37만~44만명 늘릴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위해 기업은 더 다양하고 유연한 경력 경로를 제공하는 효과적인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관행을 개발하고 이 목표를 KPI에 반영할 수 있다.

인력 재배치 전략은 최근 시장과 사회에서 기술 인재 수요와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제품 설계자, 머신러닝 엔지니어, 인공지능 전문가 등 분야별 여성 교육과 취업 촉진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이와 함께 견습 프로그램과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등으로 기존 여성 인재를 재교육하고 기술을 향상시켜 신규 수요가 발생하는 분야에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STEM 분야를 전공한 비기술직 종사자 여성, 수요가 많은 기술을 보유한 비전공·비기술직 종사자 여성, 수요가 많은 기술 인접 분야 기술을 보유한 여성 등 세 그룹의 인력 재배치를 통해 27만~85만명의 인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인재 양성 확대 전략은 대학에서 STEM 전공으로 입학하는 여학생을 늘리고 이들의 졸업 시기에 취업률을 높이는 것을 포함한다. STEM 분야 입학 여학생이 1% 증가하면 2027년까지 기술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이 1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학이 STEM 분야 여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인턴십 기회를 확대하고 경력 멘토링과 코칭을 제공하며 첨단 기술 프로젝트에 여학생 참여를 독려하면 이들의 졸업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맥킨지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여성과학기술인의 끊어진 경력 사다리(broken career ladder)를 보완하기 위해 초·중등 교육 전반에 걸친 조기 이탈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ISET 정책연구센터는 유럽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대해 진단하고 “우리나라 또한 여성의 STEM 분야 유입 인력과 경력 경로 전반에 걸쳐 주요 이탈 지점을 파악하고 원인 분석과 이탈 방지 방안을 마련해 STEM 분야 여성 참여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TEM 분야 여성 인력 확대가 향후 기술 인재 부족 문제를 위한 해결책임을 인식하고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여성 인재 양성과 활용을 우선 과제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