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시민들 "노무현 그립습니다"…정치권은 신경전에 '국민통합' 뒷전
2023-05-24 00:01
르포 '봉하마을 추도식' 가보니
盧전대통령 서거 14주기 4500명 참배
여야 지도부 동상이몽…총리에는 야유
盧전대통령 서거 14주기 4500명 참배
여야 지도부 동상이몽…총리에는 야유
여야 지도부가 23일 경상남도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돈 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 등 잇따른 당내 리스크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층 결집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임 대통령들에 대한 재평가를 통한 '국민 통합'과 '외연 확장'을 꾀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그러나 추모식 현장은 한국 정치의 구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무현 정신'을 언급하며 국면 전환을 꾀하는 민주당 모습과 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보수 정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하는 국민의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노 전 대통령 추모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盧 서거 14주기, 봉하마을 찾은 시민들···"그립습니다"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은 추도식에 참석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생태문화공원 입구에는 '한 송이 2000원'이라고 적힌 추모꽃 국화를 판매하는 가판대와 노란색 모자·부채, 추모떡 등을 나눠 주는 부스 등이 줄지어 있었다. 추도식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참배객 4500여 명이 입장했다.
대구에서 10살 아들과 함께 온 김현범씨(35)는 "아들이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함께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역사의 한 모습을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참석했다"면서도"여야 정치인이 '노무현 팔이'를 하는 모습까지는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비판했다.
5개월 된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함께 추도식을 찾은 유민식씨(41)는 "매년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는데 올해는 특히 더 와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고 했다. 유씨는 "파주에서 여기까지 왔다. 한국 정치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 노 대통령이 더 많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치의 구태 투영되기도···韓 총리 연설에 '야유'
여야는 '노무현 14주기'를 맞아 일제히 '노무현 정신' 계승을 다짐하면서도 상대 진영에 견제구를 날리는 등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께서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향해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조직된 힘으로 뚜벅뚜벅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반면 김 대표는 이날 김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 뿌리를 이뤄 오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다시 한번 새기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3월 대표에 선출된 이후 줄곧 전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찾아 "(박 전 대통령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오신 지도자"라며 "과(過)도 있겠지만 과보다 공(功)이 훨씬 많으신 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야 지도부의 '동상이몽'을 투영한 듯 추도식 현장도 '국민 통합'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었다. 정부·여당이 '국민 통합'을 강조한 것과 달리 한덕수 국무총리의 추도사가 이어질 때는 객석에 앉아 있던 시민들이 거세게 야유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한 총리가 추도식을 위해 무대로 오르자 "내려가라" "물러나라" "꺼져라" 등 야유를 퍼부었다. 노무현재단 관계자가 "노 대통령님 얼굴을 걸고 하는 행사다.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추도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총리를 향해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