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멈췄다] 불투명해진 입법·행정 정책에 반도체·석화 지원 올스톱 "韓 기업 운다"

2024-12-12 04:00
부총리 주재 석화지원 정책 발표 무기한 연기
석화 대표들 위기대응 모이지만 뾰족한 수 없어
미중 반도체 굴기 대응한 특별법도 국회 계류

[사진=아주경제DB]

탄핵정국 장기화가 예고되면서 국회·정부가 추진 중이던 경제·기업 지원 특별법과 정책 관련 논의가 멈췄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맞춰 미국·중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한층 노골적으로 변하는 만큼 반도체특별법, 석유화학 구조조정 등 위기에 처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복원하는 법안과 정책은 불법 계엄 조사와 별개로 초당적 협력을 통해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가 추진 중이던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가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이번 주 중 부총리 주재로 발표를 계획하고 정책을 짜고 있었는데, 국회·정부가 탄핵정국에 돌입하면서 추진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규모 경제 정책은 부처 합의만으로 발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실의 동의와 예산권을 쥔 국회의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대통령실은 마비됐고, 국회는 불법 계엄 조사와 대통령 탄핵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국내 석화 업체 대표들은 19일 한자리에 모여 중국 플라스틱 과잉 생산과 중동 석화산업 진출 등 위기 상황에서 해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가 빠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머리를 맞댄다고 해서 뾰족한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는 게 재계 관계자의 평가다. 지원 정책이 빠르게 추진되도록 정부·국회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경쟁력 강화 방안은 정부 주도로 10여 년 만에 재추진하는 산업구조 조정 정책이다. 에틸렌 등 기초 범용제품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인 스페셜티 위주로 석화 사업 재편을 유도하면서 세제혜택과 정책금융 등의 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업활력법을 적용해 기업이 주주총회 대신 이사회 결의만으로 기업분할과 인수합병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할 전망이다. 정책이 현실화하면 생존을 위한 국내 석화 기업 간 대규모 인수합병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국회에 계류 중인 1700여 개 경제·기업 관련 법안도 모두 처리가 멈췄다. 가장 시급한 법안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특별법’과 송전설비 구축 기간을 단축하는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이다.

반도체특별법은 미국의 대중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출 금지와 자국 내 생산설비 보조금 정책에 대응해 한국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 등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제외(화이트 칼라 이그젬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 엔비디아, 대만 TSMC 등이 필요 시 밤샘 연구를 하면서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특단의 조치다. 하지만 야당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권 문제를 이유로 52시간 근무제 제외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지난달 28일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송전망 설치 속도가 전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추진된 전력망확충특별법 관련 논의도 멈췄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관련 입법은 정치적인 것과 완전히 분리해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일례로 반도체특별법을 꼽았다. 그는 "반도체특별법이 시급한 만큼, 문제가 되는 '주52시간제'를 떼어놓고 여야가 합의를 구해 법을 추진하면 된다"며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다. 여야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골라내고 협의를 보며 탄핵정국의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