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저준위방폐장 방사능 수치 '0'...고준위 처분 시설 시급

2023-04-02 18:30
동굴처분시설 방사능 수치 '제로'...안전성 확인
맥스터 14기 중 절반 포화...2037년엔 '또' 포화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안 국회서 공회전 중

 

경북 경주시에 있는 중저준위방폐장 동굴처분시설 내부[[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

 
"우리 세대가 쓰는 빛(전기)을 미래 세대에 빚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합니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감포 앞바다 해안도로에 있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을 찾았다. 이곳에는 국내 유일한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을 운영 중이다. 경주 방폐장은 방사능을 활용하는 연구소나 병원, 산업체, 원전 등에서 나오는 작업복과 실험 도구, 보관 용기 등 비교적 방사능 농도가 낮은 중저준위 방폐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다. 

먼저 해수면 아래 130m에 있는 동굴처분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방호복과 면장갑, 덧신, 방사선량계를 착용하고 시설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뚫린 방폐물 처분고가 보였다. 처분고는 둘레 25m, 깊이 50m 크기의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로 이른바 사일로(Silo)라고 부른다. 

사일로 상부에는 처분용기를 운반하기 위한 트롤리(크레인)가 있었다. 한 개의 처분용기에는 200ℓ 드럼 16개 또는 320ℓ 드럼 9개가 담기는데 크레인을 통해 사일로 안에 차곡차곡 쌓게 된다. 처분 용기 하나당 무게는 7t에 달한다. 현재 설치된 사일로 6기에서 총 10만 드럼의 방폐물을 처분할 수 있다.

사일로가 다 채워지면 빈 곳과 상부는 쇄석(자갈)으로 채운 뒤 콘크리트로 봉쇄한 뒤 연구 보존한다. 실제로 착용하고 온 개인 방사선량계를 확인했더니 0밀리시버트(mSv)로 수치 이동이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방사선 누출이 '제로(0)' 수준이라는 얘기다. 
 
동굴처분시설에서 나와 이동한 곳은 표층처분시설 공사 현장이었다. 표층(동굴)이 아닌 외부에 있는 만큼 이곳에서는 중준위보다 방사능 준위가 낮은 저준위·극저준위 물질을 처분하게 된다.

해발고도 107m·6만7490㎡의 부지에 처분고 20개, 지하로, 이동형 크레인, 배수계통 등이 들어선다. 12만5000드럼의 방폐물을 처리할 예정이며 진도 7.0 규모에도 버틸 수 있는 내진 설계를 추가했다.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정률은 약 80% 수준이다.

이경환 공단 중저준위운영본부 시공관리팀장은 "방사선량에 따라 방폐물을 재분류해 저준위방폐물과 극저준위방폐물은 동굴처분시설이 아니라 표층처분시설로 옮겨져 처분될 것"이라며 "2018년 4월에 표층처분시설의 내진 성능을 0.2g(규모 6.5)에서 0.3g(규모 7.0)으로 재설계를 완료해 안전성을 더욱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부지 내 지상에 설치된 건식저장시설 사일로[사진=한국수력원자력]


이어서 차를 타고 이동해 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를 찾았다. 이곳에는 국내 유일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인 사일로와 맥스터(조밀저장시설)가 자리 잡고 있다. 

원전에서 발전에 사용된 우라늄 연료인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고준위 방사능을 가져 중·저준위 방폐물과는 다른 차원으로 특별 관리해야 한다. 원자로에서 나온 직후 사용후핵연료는 물로 채워진 저장 수조에서 열을 식히고 방사선량이 낮아지도록 보관하는 습식 저장 방식을 5년가량 거쳐야 공기 대류에 의한 자연 냉각으로도 핵연료를 식히는 건식 저장이 가능하다. 건식저장은 비교적 장기 관리가 가능하고 운전관리 비용이 적은 이점이 있다.

문제는 맥스터 14기 중 7기가 현재 포화상태라는 점이다. 지난 2009년 맥스터 7개를 건설해 운영해왔으나 방폐물이 꽉 차면서 7기를 추가로 건설했다. 그러나 평균 원전 가동을 감안하면 2037년이면 또다시 월성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놓인다는 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설명이다.

현재 국회에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과 관련해 김영식·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야 모두 특별법 처리가 시급하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저장용량과 관리 시설 확보, 이전 등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후대에 원전 사용에 대한 빚을 남기지 않으려면 특별법을 제정해 방폐물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